어머니의 한 마디에... 세계 1위 치매약 만든 日 연구원 이야기

입력 2022.09.04 06:44수정 2022.09.04 18:50
어머니의 한 마디에... 세계 1위 치매약 만든 日 연구원 이야기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이영성 기자 = 인지 기능 장애로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운 질병인 '치매'는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이 가장 흔한 원인이다. 가족마저 몰라보게 만드는 치매는 '잔인한 질병'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는 2015년 약 39만명에서 2019년 55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고령자가 많아지면서 그 증가폭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치매를 완치할 수 있는 치료제는 사실 없다. 하지만 증상 악화 속도를 늦추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약은 있다. 치매약 세계 매출 1위 성분인 '도네페질'의 오리지널 의약품 '아리셉트'가 그 주인공이다. 아리셉트는 지난해 원외처방액 861억원(자료 유비스트)을 기록, 국내 치매약 시장 1위를 기록했다.

◇아들 몰라본 어머니의 모습…'아리셉트'의 탄생

아리셉트는 원개발사인 일본 제약사 에자이(EISAI)의 대표 품목이다. 아리셉트의 2010년 전세계 매출은 무려 3228억엔(약 3조1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아리셉트는 미국에서 같은 해 11월 특허가 만료되자 수많은 제네릭(복제약)이 쏟아지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특허만료 직격탄을 맞은 에자이는 2011년 3월 미국 법인 600여명(20%)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포함해 일본, 유럽 등 법인까지 감원 계획에 포함된 인원은 300여명이 더 늘었다. 치매 약 하나가 주는 파장은 실로 엄청나게 컸다. 그만큼 아리셉트의 인기는 강력했고, 제네릭 개발사들의 최대 표적이 됐다.

도네페질 성분은 복제약까지 포함해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치매 약 성분이다. 현재 붙이는 도네페질 등 여러 개량 의약품들의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아리셉트 개발은 에자이의 연구원인 스기모토 하치로(79)가 이끌었다. 스기모토는 그의 어머니가 치매를 앓으면서 치매약 연구개발에 집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한 언론에 따르면, 어느 날 어머니가 스기모토에게 "당신은 누구인가요"라고 묻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게 아리셉트 탄생의 기원이었다고 한다.

스기모토는 1943년 일본 도쿄에서 9명의 자녀 중 8번째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를 졸업하고, 히로시마대에서 약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 에자이에서 근무하며 이룬 학업 성과다. 처음 입사 당시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 조교' 수준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이지만 당시 에자이는 연구원이 약 50명으로 상당히 작은 회사였다. 에자이는 현재 일본 내 5대 제약사, 세계 20대 제약사내 들어간다.

아리셉트의 첫 연구는 1983년 에자이 쓰쿠바 연구소에서 시작됐다. 당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비정상적인 기억력 감소와 연관됐다는 가설이 연구 기반이었다. 그렇게 진행된 연구를 통해 '도네페질'이 성공적으로 합성됐다.

아리셉트는 199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시판허가를 받았다. 현지 공동판매는 다국적제약사 화이자가 맡았다. 아리셉트가 2010년 특허가 만료되면서 첫 복제약은 인도 최대 제약사인 란박시가 그해 FDA 승인을 받았다.

◇아세틸콜린 분해 막는 작용…1일 1회 경구 투여

아리셉트의 작용기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치매는 대체로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을 분비하는 뇌 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아세틸콜린 분비가 줄어 인지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말한다. 가장 좋은 치료는 뇌신경세포를 되살리는 것이지만 다른 차원의 문제여서 대부분의 약품들이 아세틸콜린을 보존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아리셉트는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 '아세틸콜린에스터라제'를 억제한다. 즉, 아세틸콜린 분해를 막는 작용을 한다. 그러면서 뇌 신경세포 접합부인 '시냅스' 간극의 아세틸콜린 농도를 증가시켜 인지기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 진료가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2000년 8월 4일 첫 허가를 받아 처방되고 있다. 아리셉트 5·10㎎으로 복용법은 1일 1회 5㎎씩 취침 전 먹으면 된다. 도네페질 농도가 투여 15일 후 정상상태에 도달하고 이상반응 빈도가 증량 속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4~6주간은 5㎎ 용량을 투여한다. 이 기간 임상적 반응을 평가한 후 10㎎까지 증량이 가능하다.

투여를 중단하면 효과가 서서히 감소한다. 저체중인 85세 이상 여성 환자에게는 이상반응이 많이 나타나 관찰이 필요하다. 소아 투여 경험은 없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울러 이 약 구성성분에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임신부 혹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 수유부는 투여 금기다.

◇몸에 붙이거나 1달 1번만 투여하거나…여러 제형 개발

아리셉트는 새로운 제형으로도 개발되고 있거나 판매 중이다. 국내 기업 셀트리온이 도네페질 성분의 몸에 붙이는 패치제 '도네리온패취'를 지난해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약을 꼬박꼬박 먹기 어려울 수 있는 치매 환자에게 투약 편의성을 더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셀트리온은 이 패치제를 개발한 아이큐어와 계약을 맺어 12년간 국내 독점판매 권리를 확보했다.

국내 다른 기업 인벤티지랩은 1달에 1회만 투여하면 되는 도네페질 주사제를 개발 중이다. 약물을 서서히 방출시킬 수 있는 자체 기술이 적용됐다. 약 삼키기가 어렵거나 복약 순응도가 떨어지는 환자들에게 획기적인 치료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리셉트 외에도 현재까지 허가된 오리지널 치매 약으로는 △엑셀론(성분 리바스티그민, 노바티스사) △라자딘(성분 갈란타민, 얀센사) △나멘다(성분 메만틴, 머츠사) 등이 있다. 모두 근본적인 치료제는 아닌 증상 완화제로 볼 수 있다. 미국 바이오기업 바이오젠이 개발한 '아두헬름'이 지난해 FDA로부터 조건부 허가를 받았지만, 유럽에선 불허를 받으면서 효과에 대해 큰 잡음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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