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아들 죽이는 것 도와주면.." 어긋난 우정의 결말

입력 2022.09.04 06:01수정 2022.10.27 17:39
"의붓아들 죽이는 것 도와주면.." 어긋난 우정의 결말
백광석(49)이 지난해 7월19일 오후 9시쯤 살인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된 직후 제주동부경찰서로 호송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2021.7.20/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의붓아들 죽이는 것 도와주면.." 어긋난 우정의 결말
백광석(49·왼쪽)과 김시남(47). 제주경찰청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는 지난해 7월26일 이들에 대한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제주경찰청 제공)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백광석(49)은 행복한 가정을 꿈꿨다.

2018년 11월부터 A씨 집에서 A씨와 자신의 친아들, A씨 아들 B군(15)까지 함께 살며 사실상 가족관계를 꾸린 그다. 이 때 B군도 백광석을 '아빠'라고 부르며 잘 따랐고, 백광석의 친아들과도 형제처럼 지내 이렇다 할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소중한 가정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A씨를 향한 끝 모를 집착이 그 이유였다.

백광석은 동거 기간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거나 집에 늦게 들어온다는 이유로 A씨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B군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도 소용이 없었다.

2021년 5월 별거 후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한밤중 A씨 집에 몰래 들어가 잠자고 있던 A씨의 목을 조르며 무차별적으로 폭행 할 정도였다.

이 때 백광석은 A씨에게 "네게 가장 소중한 것을 뺏아 가겠다", "네 아들을 죽이고, 널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말하는 등 살해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백광석은 A씨의 신청으로 그 해 7월4일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A씨의 주거지 100m 이내 접근 등을 금지하는 긴급임시조치를 받게 됐는데,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그가 찾은 사람이 바로 지인인 술집 사장 김시남(47)이었다.

백광석은 당시 코로나19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있던 김시남에게 한 번은 400만원, 한 번은 90만원 등 수차례 돈을 주면서 자신을 도와 달라고 했다.

"함께 A의 집에 들어가 B를 제압해 달라", "만약 이야기가 잘 되지 않아 내가 B를 죽이게 되면 나도 같이 죽을 생각이기 때문에 너는 걸리지 않는다", "일이 잘못되면 내 카드로 돈을 뽑아 사용하면 된다" 등의 말로 설득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손을 잡은 백광석과 김시남은 지난해 7월16일과 17일 이틀간 A씨 집 주변을 돌면서 구체적인 범행방법을 논의한 뒤 다음날인 18일 범행에 나섰다.

사건 당일 오전 9시쯤 A씨가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B군이 집에 혼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들은 오후 3시쯤 6시간 대기 끝에 A씨 집 2층 다락방 창문이 열리자 곧바로 그 곳을 통해 A씨 집 안으로 침입했다.

이후 B군은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격렬히 저항하다 무차별 폭행당했고, 결국 목을 졸려 사망한 것이다.

사전에 얘기한 '일이 잘못된' 결과가 발생하자 김시남은 사건 당일 오후 4시쯤 A씨 집을 빠져나간 뒤 백광석과 통화하면서 집에 불을 지를 것 등을 지시하고 전날 받은 백광석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등 상당히 발빠르게 움직였다.

백광석은 김시남의 지시대로 증거를 없애려고 집 안에 있던 망치로 B군의 휴대폰을 부수고 집 안 곳곳에 식용유를 뿌렸지만 끝내 불은 지르지 않았다.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고 어머니와 한 마지막 통화에서 마음이 바뀐 탓이었다.

A씨는 사건 당일 오후 10시50분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이튿날인 19일 제주시의 한 숙박업소 등에서 김시남과 백광석을 차례로 긴급체포했다.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내내 네 탓만 했다. 백광석은 "제압하는 것만 도와 달라고 했는데 김시남이 B를 살해했다", 김시남은 "아니다. 현장을 빠져나온 뒤 백광석이 B를 살해했다"며 지루한 공방을 벌였다.


원심 재판부인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그 해 12월9일 백광석에게 징역 30년, 김시남에게 징역 27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증거를 종합하면 김시남이 직접적인 살인의 결과를 야기했으나 백광석의 적극적인 설득과 회유가 아니었다면 범행에 나아갈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두 피고인 모두 과거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범죄 전력이 있는 점에 비춰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고 재범의 위험성도 매우 높다"고 판시했다.

백광석과 김시남은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항소·상고한 끝에 대법원까지 갔지만 지난 7월28일 기각돼 각각 징역 30년, 징역 27년의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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