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수도권에 쏟아진 폭우로 반지하 거주민들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한 남성이 반지하 자취방 탈출 후기를 직접 전했다.
남성 A씨는 지난 1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침수지역 반지하 거주하던 사람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살면서 이런 경험 처음 해보고 진짜 머리가 콱 하고 막혔다"고 말문을 열었다.
글에 따르면 그의 집은 이미 물이 무릎 아래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이에 A씨는 방범창 사이로 키우던 강아지부터 급하게 올려보냈다.
이후 현관문을 열기 위해 시도했으나 열리지 않았다고. 그는 "문틈 중간까지 수압이 높은 느낌으로 실시간으로 물이 들어오고 차오르는 게 보여서 사고가 정지했다"며 "키 185㎝에 몸무게 113㎏인 내가 안간힘으로 밀어붙이는데도 꿈쩍도 안 해서 정신줄을 두 번 놓게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 A씨는 '여기서 죽어야 하는 건가?', '빠루(노루발못뽑이)라도 있으면 딸 수 있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집에 구비해 둔 그라인더(연삭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라인더로 방범창을 갈았으나 배터리가 얼마 없어 A씨가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을 뚫기에는 어려웠다고 한다.
A씨는 "발악해도 죽는구나 싶어서 유서라도 쓰려는 순간 사둔 터보 토치가 생각났다'며 "방범창에 불을 쏜 뒤 펜치로 잡아서 휘어가지고 겨우 탈출했다"고 전했다. 이때 물 높이는 그의 가슴까지 차오른 상황이었다.
이어 "망가진 방범창 사이로 방 안을 들여다봤는데 아무것도 안 보였다"며 "누전차단기는 진작에 작동해서 전기 안 올라와 다행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엄청났다"고 털어놨다.
본가로 가려던 A씨는 지갑도 휴대전화도 없어 무작정 이웃집을 찾아갔다. 그는 문을 열어준 이웃집 아저씨에게 "여기 밑에 반지하 살던 사람인데 지금 겨우 탈출했다. 2만원만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그에게 돈을 건네면서 "옷 줄 테니까 손에 든 가스 토치 버리고 손도 그만 떨어라. 들어와서 씻고 옷 갈아입고 날씨 잠잠해지면 가라"라고 토닥였다.
그는 "여기서 부모님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갔다"며 "아버지는 나보고 자취방 물 빠지면 건질 거 건지고 본가로 다시 오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반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떻게 침수될지 모르니 배터리형 그라인더와 가스 토치, 펜치 등을 집에 두고 살라는 것"이라고 조언을 덧붙였다.
글을 본 누리꾼들은 "너무 무섭다", "건장한 남자도 물 차면 탈출 힘들구나", "그라인더와 토치 없었으면 죽을 뻔했다", "말 그대로 기지 발휘해서 살았다", "현실감 느껴져서 더 공포스럽다", "정말 아찔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서울시는 지하·반지하 의 '주거 목적 용도'를 전면 불허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주 중 지하층을 주거용으로 건축 허가하지 않는 내용의 '건축허가 원칙'을 각 자치구에 전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