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부산에서 술을 마시다 말다툼 중 폭행으로 길바닥에 넘어진 피해자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모텔에 방치해 숨지게 한 일당들이 "죽을 줄 몰랐다"며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했다.
부산지법 형사12단독 정철희 판사는 지난 16일 피해자 A씨(20대)를 모텔에 방치한 B씨 등 4명(모두 20대)에 대한 첫 재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은 지난해 3월 피고인들이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이후 약 1년3개월만에 열린 것이다.
<뉴스1>이 입수한 CCTV와 검찰 공소사실 등에 따르면 테마카페 아르바이트 동료 사이였던 A씨와 B씨 등 6명은 2020년 10월14일 밤 부산진구 서면 번화가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날 오후 11시18분쯤 술을 마시던 A씨와 F씨 간 시비가 붙었다. F씨는 A씨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멱살을 잡고 발길질하며 아스팔트 바닥에 밀쳤다.
A씨는 넘어지며 머리를 크게 다쳐 곧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F씨를 비롯한 일행 5명은 30분간 A씨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일으키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문제는 피고인들이 119에 신고하지 않고 A씨를 주점 바로 옆에 있는 모텔에 옮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텔에서 별다른 구호 조치를 하지도 않고 A씨만 객실에 홀로 둔 채 모텔을 빠져나왔다. A씨는 결국 다음날 오전 2시쯤 외상성 뇌출혈로 숨졌다.
더욱이 이들은 A씨의 장례식장에 나타나 뻔뻔하게 범행 사실을 숨기며 거짓말을 했다. A씨가 술에 만취해 길바닥에 누우려 했고, 상처는 바닥에 혼자 넘어지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자신들은 폭행한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A씨의 친누나 최모씨(가명)는 "B씨 등 일행이 장례식 첫날에 와서 동생에게 집에 가자고 했는데, 동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며 "모텔에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니 화장실 다녀온 뒤 힘들어서 담배 피우고 나왔다고 하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장례식 이튿날 "혼자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아니다"는 부검의의 판단에 CCTV 분석에 들어갔다.
CCTV 영상에는 F씨가 A씨를 밀친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A씨와 한때 아르바이트 동료였던 피고인들은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며 유족들을 두 번이나 울렸다. 일행 중 누구라도 빨리 119에 신고했었다면 A씨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F씨는 지난해 5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형이 무겁다는 이유로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F씨를 제외한 일행 4명은 사고 1년 8개월만에 법정 앞에 섰다. 이들은 변호인을 통해 "유족들에게 죄송하지만 사망 예견 가능성에 대해선 인정하기 어렵다"며 법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폈다.
이에 A씨 변호인은 "피고인들은 피해자가 머리를 다친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현장에서 수십분간 방치했고, 모텔로 옮겨 다른 보호 가능성까지 차단해버렸다"며 "유족들에게 거짓말을 해 더 큰 상처를 준 점 등을 참작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A씨 유족들은 아직도 CCTV 장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앞서 이 사건은 2020년 11월 A씨의 지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제 여자친구 친동생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라는 글을 통해 알려져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음 재판은 8월18일 부산지법 351호 법정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