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탈했던 故송해, 별세 전날 '한그릇 뚝딱' 맛있게 비운 음식

입력 2022.06.09 12:57수정 2022.06.09 13:37
기사내용 요약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작곡가
송해 대신해 대타 MC로 활약…당분간 임시 진행

소탈했던 故송해, 별세 전날 '한그릇 뚝딱' 맛있게 비운 음식
[서울=뉴시스] 현역 최고령 MC인 송해가 8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5세. 사진은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보고 있는 송해 모습. (사진=KBS 제공) 2022.06.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송해 선생님을 모시는 실장님께 얘기를 들었는데, 지난 7일(별세 하루 전) 낮에 낙원동 사무실까지 직접 나오셔셔 점심으로 순두부 찌개 한 그릇을 '뚝딱' 맛있게 다 드신 뒤, 한참을 이야기 하시다가 귀가하셨대요. 최근 들어 식사를 시원찮게 하셔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이라고 여겼던 거죠."

작곡가 이호섭(63)은 9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국민 MC' 송해(95)가 별세하기 전 고인이 보낸 하루를 천천히 복기했다. 송해의 상징과도 같은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 그는 약 30년 전부터 고인과 각별한 사이로 지냈다.

이 작곡가는 전날 송해의 별세 소식을 듣고 처음엔 "가짜 뉴스"라고 여겼다. "당신 발로 걸어나오셔서 직접 일을 챙기셨는데… 전 경북 상주로 특강을 하러 가는 도중이었거든요. 처음엔 부고 소식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어요. 아마 그날 댁으로 돌아가신 뒤 밤새 화장실을 오가시면서 탈진이 돼 기력이 쇠하신 게 아닐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송해는 전날 오전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딸이 신고했으며,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했지만 눈을 뜨지 못했다.

송해가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들른 낙원동은 실향민인 그가 60년 넘게 활동 거점으로 살아온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개인 사무실이자 원로 연예인을 위한 쉼터인 '연예인 상록회'는 물론 평소 자주 드나들던 이발소·사우나·국밥집 등 단골집이 수두룩하다. 지난 2016년 종로문화원은 종로 육의전 빌딩에서 낙원상가 앞까지 240m 구간을 '송해길'로 지정했다.

10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식이 엄수된 뒤 고인의 유해는 이곳도 거친다.

이 작곡가는 "약 26년 전부터 사무실(연예인 상록회)을 운영해오시는 것을 봐 왔는데 원로 연예인분들을 불러 모으셔서 여전히 우정을 나누는 곳으로 사용하셨어요. 점심도 사주시고, 외롭지 않게 서로 부둥켜 안으시고, 친목을 다질 수 있게 원로 연예인들의 놀이 공간으로 개방하셨죠. 항상 술도 대접하셨죠"라고 돌아봤다.

이렇게 평소 정을 베푸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니 전날 빈소가 차려진 직후 각계각층에서 찾아와 밤늦게까지 많은 이들이 고인의 가는 길을 지켰다. 그 중 한명이었던 이 작곡가는 "빈소에 모인 분들은 친형님 또는 친아버지를 잃은 것 같은 심정으로 앉아 있었다"고 했다.

이 작곡가는 송해와 연이 많다. 송해가 '전국노래자랑' MC 자리를 비울 일이 있으면 그가 기꺼이 대타로 나섰다. 지난 7일 경기 양주 녹화 당시에도 이 작곡가와 임수민 아나운서가 사회를 봤다.

소탈했던 故송해, 별세 전날 '한그릇 뚝딱' 맛있게 비운 음식
[서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故) 송해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2022.06.08. photo@newsis.com
이 작곡가와 임 아나운서가 약 11년간 함께 진행한 KBS 해피FM '이호섭 임수민의 희망가요'는 '전국노래자랑'의 자매 결연을 맺은 프로그램이다. '전국노래자랑'의 심사위원까지 맡았었으니 송해에 이어 이 프로그램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이 작곡가다.

"'전국노래자랑'은 장윤정 임영웅 김혜연 송가인 송소희 이찬원 박상철, MC 조영구까지 숱한 스타들을 배출했죠. 적게는 3세부터 많게는 115세까지 출연을 했으니, 1세기를 아우르는 방송입니다. 세대 간, 남녀 간, 직능 간, 인종 간에 소통이 되지 않는 사회적 구조의 막힌 점을 뻥 뚫어주신 '통합의 아이콘'이 송해 선생님이시죠."

그뿐만 아니다. 송해는 장르의 모든 걸 다 녹여내는 '음악의 용광로'와도 같았다. "출연자가 가요를 부르든, 민요를 부르든, 판소리를 부르든 다 받아주셨어요. 모든 음악에 박식하신 '음악 백과사전' 같은 분이셨죠."

송해는 서민들이 풀지 못하는 억울한 사연들을 다 받아주시는 중재자이기도 했다.

이 작곡가는 "'전국노래자랑'은 사람들의 응어리지고 아프고 분한 것 그리고 한을 다 풀어내던 장소였어요. 송해 선생님은 그 '한풀이의 주재자'였죠. 안방에서 그런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시청자들이 많았죠. 그래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박수 치며 볼 수 있는 유일한 가족 프로그램이었다"고 봤다.

'전국노래자랑' 송해의 후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작곡가와 임 아나운서가 당분간 임시 MC를 맡게 됐다.
이미 여러 번 '전국노래자랑' 대타 MC로 나섰던 그는 "저는 '라디오 공개방송 전문 MC'로도 불리는데 '전국노래자랑'은 확연히 다르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전국노래자랑'은 방송 진행만 하는 게 아니라 출연하시는 분들의 눈높이를 일일이 맞춰야 해요. 남녀노소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직업이든, 다문화 가족이든 즉시 그들이 인생을 받아낼 수 있어야 하죠. '천하의 송해 선생님'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요. 그래서 대타를 맡을 때마다 늘 두려움을 느꼈고 당분간 그 두려움을 또 느껴야 할 거 같아요. 혹여라도 선생님이 쌓아오신 '찬란한 금자탑'에 손상을 입히고 누가 될까 엄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당분간 임시로 맡게 됐는데 당연히 선생님 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세대의 사연과 노래를 받아줄 수 있는 그릇이 되고자 하는, 그 생각 하나로 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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