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뉴스1) 조현기 기자,박기호 기자 = "꿈이 다 사라졌어요"
'아빠맘' 농장주 김형원씨(63·남)는 경북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에서 난 산불로 타버린 양봉농장을 바라보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지난 4일부터 울진과 동해안 지역을 강타한 산불로 벌통 250개, 벌 1000만마리, 설탕 400포대, 말벌퇴치기를 비롯한 농기계 등 1억5000만원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장비가 없을 정도로 농장 전체가 파괴됐다.
김씨뿐 아니라 울진지역의 많은 양봉 농가들이 이번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산림이 울창하고 미세먼지가 적은 울진지역은 다른 곳보다 우수한 아카시아꽃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이면 전국의 양봉업자들이 앞다퉈 울진을 찾을 정도다.
◇알려지지 않은 울진 양봉업계 피해…재기할 수 있는 기반 지원 필요
울진군 죽변면 양봉업계 작목반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12일 "원자력발전소를 지키기 위해 이곳의 피해가 커졌다"며 "양봉업자들의 피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지난 4일 오전에 불이 났다고 들었는데, 이곳 죽변지역은 12시간이 지난 5일 새벽까지는 괜찮았다"며 "하지만 원자력발전소가 위험하다고 하니까 모든 소방인력이 그쪽으로 집중됐고, 갑자기 바람까지 불면서 이곳이 위험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물론 원전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설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이해된다"며 "다만 대(大)를 위해 우리와 같은 소(小)가 희생됐으면, 희생된 소가 다시 현실적으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냐"고 강조했다.
특히 김씨는 "언론에선 정부가 피해금액의 70%를 대준다고 하니까, 전체 피해금액의 70%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한 가구당 지원하는 최고금액(1600만원)의 70%를 정부에서 지원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금액이면) 인부들을 동원해서 폐허가 된 이 곳을 정리하면 소진된다"며 "다시 재기할 수 없을 정도"라고 호소했다.
◇"단순한 양봉 농가 아니라 아빠의 꿈·장애인의 꿈 담겨있어"
무엇보다 김씨는 이번 산불이 단순히 물질적인(경제적인) 피해뿐 아니라 '꿈'을 삼켜가버렸다고 좌절했다. 그는 "이 공간은 양봉을 해서 꿀을 재배하는 곳이 아니라 '아빠의 꿈', '장애인의 꿈'이 담겨있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농장 이름인 '아빠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씨는 두 아들을 위해 이곳을 7년 동안 열정적으로 가꿨다. 사실 그의 두 아들은 발달장애를 겪고 있다. 김씨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여러 일을 찾아봤지만 번번히 좌절을 맛봐야했다.
그런 와중 김씨는 양봉업을 찾았고, 두 아들 역시 다른 일과 달리 적응을 잘 했다. 그는 "발달장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정말 많이 고민했다"며 "그 결과 양봉을 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장애를 갖고 있는 다른 아이들도 이곳에 와서 일을 할 수 있게 자동화시설 등을 갖추기 위해 투자를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꿈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수천만원대의 대출을 받아 이곳에 투자를 했다"며 "지난해에는 아카시아꽃이 제대로 피지 않아 흉년이 들었고 코로나19로 본업인 가게도 힘들어지면서 카드론까지 받았다. 그렇지만 꿈을 꾸면서 꿋꿋히 버텼다"고 울먹였다.
그는 "산불이 나고 꿈을 잃어버렸다. 매일 일어나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돌'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아빠의 꿈, 우리 장애인들의 꿈이 다시 여기서 움틀 수 있게 꼭 도와달라"고 정부와 지자체에 간곡히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