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평 양파밭 갈아엎은 40년 농사꾼의 사연

입력 2022.02.26 08:01수정 2022.02.26 10:24
1000평 양파밭 갈아엎은 40년 농사꾼의 사연
지난 23일 전남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4-4에서 진행된 2020년 전국 양파 생산자 대회에서 이승윤씨(66)가 갈아엎어진 자신의 양파밭을 바라보고 있다. 2022.2.23/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1000평 양파밭 갈아엎은 40년 농사꾼의 사연
지난 23일 전남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4-4에서 진행된 2020년 전국 양파 생산자 대회에서 이승윤씨(66)가 직접 트랙터에 올라 자신의 밭을 직접 갈아엎고 있다.2022.2.23/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1000평 양파밭 갈아엎은 40년 농사꾼의 사연
지난 23일 전남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4-4에서 진행된 2020년 전국 양파 생산자 대회에 참가한 농민들이 예초기로 잎이 잘려진 양파들 위로 걸어가고 있다. 2022.2.23/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고흥=뉴스1) 박동해 기자 = 지난 23일 오후 2시 전남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4-4번지, 거금도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양파밭 옆으로 1톤 트럭들이 하나둘 정차했다. 줄지어 늘어선 수십대의 트럭에는 '양파 최저 생산비 보장'이라는 문구가 적힌 빨간 깃발이 뿔처럼 꽂혀있었고 트럭을 몰고 양파밭을 찾은 농민들의 머리에도 같은 문구가 적힌 빨간 띠가 매여 있었다.

트럭을 몰고 온 전국양파생산자협회 회원들은 싣고 온 예초기에 시동을 걸고 무릎 높이까지 자란 양파 잎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예초기를 둘러맨 이들이 잎을 잘라내자 뒤따라오던 이들은 겨우내 양파들을 지켜줬던 반투명한 비닐들을 땅에서 뜯어냈다. 날리는 흙먼지 속에 연초록빛 양파의 윗동이 드러났다. 연하게 양파 썬 냄새가 났다.

"울화통이 터집니다. 우리가 애지중지하고 키운 양파를 갈아엎는다는 것은 우리 농민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분노 섞인 외침과 구호, 성명 발표가 이어지고 밭을 둘러쌓고 세워져 있던 트랙터 다섯대에 시동이 걸렸다. 트랙터 뒤에 달린 로터리가 돌아가며 땅을 파헤쳤다. 지난해 7월 파종한 씨앗을 양파로 키워낼 때까지 8개월의 시간이 걸렸지만 다섯대의 트랙터가 1000평의 양파밭을 전부 갈아엎는 데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트랙터들이 밟고 지나간 양파밭에는 너울이 생겼다. 그 모습이 밭 너머 잔잔한 모습의 쪽빛 바다와 대비됐다. 트랙터의 육중한 바퀴들이 남기고 간 너울의 골짜기 마다 양파들이 갈려 나간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양파 썬 냄새가 강해졌다.

양파밭의 주인인 이승윤씨(66)도 절뚝거리며 트랙터에 올랐다. 이씨는 짧게 '원래 발이 좀 불편하다'고만 했다. 손수 가꿔온 양파밭을 직접 갈아엎은 심정을 묻자 그는 "자식이 죽은 것하고 똑같아. 자식하고 똑같아요.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을 아실 거야…정말 말이 안 나온다"고 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이씨는 40년째 양파 길러왔지만 제 손으로 밭을 갈아엎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양파는 수확 시기별로 '조생종'과 '만생종'으로 나뉜다. 해가 길지 않을 때 낮은 온도에서도 잘 자라는 종을 조생종이라 하고 해가 길고 온도가 높아야 크기가 커지는 것을 만생종이라고 한다. 파종 시기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수확 시기는 조생이 3월 중순에서 5월 상순까지, 만생은 5월 하순부터 6월 중순까지로 갈린다.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는 양파는 지난해 수확해 저장해둔 만생종 양파다.

거금도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남해안 지역에서 가장 먼저 조생종 햇양파가 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자란 거금도 조생종 양파는 매운맛이 강하지 않고 달곰해 인기가 있다. 묵은 양파만 거래되는 시장에 햇양파를 가장 먼저 낼 수 있어 시장에서 대우도 좋았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양파 가격이 폭락하면서 3월 중순부터 출하될 예정인 조생종 양파를 기르는 농민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이씨가 손수 기른 양파를 폐기한 이유도 이대로 양파 값이 계속 떨어졌다가는 출하를 해도 생산비도 건지지 못할 것 같아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25일 양파 1㎏의 도매가격은 상(上)등급을 기준으로 했을 때 559원이다. 1년 전 2180원 대비 70% 넘게 하락한 금액으로 평년 가격인 1269원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이다.

양파 농가의 농민들은 현지에서 판매하는 저장양파 가격은 도매가보다도 적다고 했다. 강선희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현재 농민들이 양파를 싣고 공판장으로 가면 운송비가 더 들기 때문에 창고에 저장만 해두고 있고 업자들이 창고를 찾아와 값을 제시하고 양파를 사간다"라며 이때 제시되는 가격이 1㎏에 150원 정도라고 했다.

더불어 강 위원장은 창고에 저장된 양파가 남아나는 상황에서 농민들이 시장에 가져가는 물량의 대부분 '하(下)품'으로 평가를 받는다며 상(上) 등급을 받는 양파의 수는 극히 적다고 했다. 실제 이씨는 "직접 가락동 시장에 가봤는데 가격이 1㎏당 250원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가격이면 작업비도 안 나온다"라며 3월 중순 출하 시점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양파 가격이 급락한 이유는 지난해 작황이 좋아 저장된 양파 수량은 많은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소비는 줄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창고에 저장된 양파 재고량은 17만6000톤으로 지난해 대비 14.6% 늘었다.

농식품부는 양파 재고가 과잉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오는 3월10일부터 4월30일까지 양파 출하를 연기하는 농가에 대해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양파를 출하하지 않고 창고에 봉인하는 농가에 대해 1㎏당 100원의 지원금을 우선 지원하고 5월1일 이후 거래 가격이 1㎏당 400원 미만으로 하락하면 차액을 최대 100원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즉 농가가 5월까지 양파를 저장하다가 1㎏에 300원에 판매하면 200원씩을 보전 받아 1㎏당 500원에 판매할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정부가 이를 위해 설정한 예산은 40억원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런 정부의 지원으로는 양파 농가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농민들은 1㎏당 최소 700원의 가격이 보장돼야 손해를 보지 않고 다음해 농사를 준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생산비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강 위원장은 "양파 가격이 오를 때는 수입을 개방해 가격을 떨어트리는 데 가격이 내려가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 가격이 오를 때 수입을 하지 않으면 농민들이 그때라도 돈을 벌 텐데 결국 농가들이 손해만 봐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양파생산자협회 소속 농민들은 24일 제주도에서도 1000평 정도의 양파밭을 갈아엎었다.
문희철 양파생산자협회 제주지부 사무처장은 "작년 여름부터 보관해 온 만생종 양파는 5월이 되면 이미 썩어 날 텐데 그 수량을 계산하면 지원비를 받으나 마나"라며 "정부가 5월이 넘어가면 가격이 안정화 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다면 정부가 지금 싼 가격에 양파를 사서 5월 이후에 팔면 될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25일 기준 양파 1㎏의 평균 소매가격은 1998원이다. 이날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대형매장에서도 양파가 100g당 193원에 팔리고 있었다. 양파 농가들은 유가 상승으로 인한 유통비 부담을 이해한다면서도 '농민은 150원에 출하하는데 소비자는 2000원을 주고 사먹는 것은 불공정한 농산물 유통구조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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