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뉴스1) 이지선 기자 = "앞으로도 기차는 못 탈 것 같아요. 꿈에 나올 정도로 생생해요."
강력범죄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게 폭행 수준의 제압을 당한 한 시민이 그날을 떠올리며 한 말이다.
지난해 4월25일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를 탄 A씨(30). 자정이 가까워지는 늦은 시각 기차에서 내린 A씨는 경찰들이 한 사람을 체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무슨 일인가'하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순간,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가방을 당겼다. 깜짝 놀란 A씨는 경찰복을 입은 이들에게 급히 가려다 그만 넘어졌다. 당시 A씨는 자신의 가방을 당긴 사람이 체포된 용의자와 연관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넘어진 A씨는 정체 불명의 남성 3명에게 발로 차이는 등 폭행을 당했다.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든 A씨가 "살려달라. 왜 이러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쳤지만, 이들은 전기충격기까지 A씨에게 가져다댔다. 이 충격으로 A씨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A씨는 자신의 손에 수갑이 채워진 사실을 알게 됐다. 괴한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경찰'이었다.
숨을 쉬기 힘들어진 A씨가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묻자, 경찰은 그제야 A씨가 자신들이 쫓던 외국인 용의자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사과했다.
A씨는 이 일로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다. 코뼈가 부러지고, 얼굴과 목, 다리 등에 타박상을 입었다. 그뿐만 아니라 악몽을 꾸는 등 정신적인 불안증세가 있어 안정제까지 먹어야 했다.
A씨는 "입원 치료를 받을 정도였고, 당시에는 그 사람들과 더이상 엮이는 게 싫어서 그저 피하고 싶었다"며 "한동안 많이 힘들었고,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앞으로도 될 수 있으면 기차는 안 탈 것 같다"고 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다른 것보다도 이 일이 알려져서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며 "제대로 된 징계나 처벌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뒤늦게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전북경찰이 해명에 나섰다. 정당한 공무를 수행하던 중 벌어진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게 경찰의 입장이다.
전북경찰청은 7일 브리핑을 열고 "당시 쫓고 있던 용의자와 피해를 당한 시민의 외모, 인상착의가 비슷했다"며 "흉기를 들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상황에서 반항을 했기에 무력을 행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전북 완주경찰서 강력팀은 강력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하던 외국인 용의자 4명을 쫓고 있었다.
용의자들은 모두 외국인 불법체류자로, 거리에서 흉기를 휘두르며 싸운 혐의(특수상해 등)를 받고 있었다.
용의자가 부산행 열차에 올랐다는 정보를 입수한 완주서 형사 2명은 급히 해당 열차에 탑승했다. 부산역에는 공조 요청을 받고 출동한 부산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
기차가 부산역에 멈춰서고 승객들이 하차하기 시작하자, 경찰 10여명이 일제히 용의자 검거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역 내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동시다발적으로 4명을 체포해야 했던 만큼, 상황이 긴박했다"며 "흉기를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한 번에 제압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까봐 그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던 만큼 해당 사건에 대한 감찰은 진행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