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없이 일하는 `기술자`들 이야기

입력 2021.11.27 07:01수정 2021.11.27 13:26
아직도 불법이라구요?
간판 없이 일하는 `기술자`들 이야기
타투이스트 도이(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가 지난 6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타투 시술을 하고 있다. 2021.6.17/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간판 없이 일하는 `기술자`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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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서울과 부산 약 400㎞ 떨어진 두 도시에 '문신'을 업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이 있다. 나이도, 성별도, 일의 성격도,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름도 다르지만 두 사람이 운영하는 업장엔 이상한 공통점이 있다. 그럴듯한 '간판'이 없고 바깥에서는 매장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로 규정되는 문신을 자신의 업으로 삼은 이 둘은 현재 '불법의료행위자'가 돼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문신 서비스를 '의료행위'에서 제외해 소정의 자격을 갖춘 문신 기술자들의 문신 시술이 가능하게 하는 '문신 합법화' 운동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뉴스1은 합법화 싸움의 최전선에서 재판을 치르고 있는 이 두 사람을 만났다. 그들의 작업장은 서울과 부산 도심에 있었지만 '불법'이라는 딱지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 숨어있었다.

서울에서 만난 15년 차 '타투이스트' 도이(본명 김도윤)의 작업실은 한쪽 큰 창으로 돼 있었지만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빚이 잘 들어오진 않았다.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 지회장으로 '타투 합법화' 운동을 이끌어온 도이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는 신고로 수사를 받고 재판정 피고석에 서게 됐다. 그의 시술로 누군가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지만 그는 1년 넘게 재판을 받고 있다.

브래드 피트, 스티브 연 등 해외 유명인들의 몸에 타투를 새겼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던 타투이스트인 도이는 사실 나서서 싸우는 '투사'가 될 필요는 없었다. 신고를 당할 일도 없었고 굳이 지금의 상황이 변하지 않아도 돈을 버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로 알고 살아가던 동료들이 자신도 모르게 범법자로 몰려 삶이 파괴되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싸움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싸움은 생각보다 지난하게 이어졌다. 지난 5월28일 첫 변론이 시작된 이후 재판은 총 4번의 취소와 연기를 거쳤다. 7월7일 선고 예정이었던 재판은 판사 직권으로 변론이 재개됐고 '코로나19'를 이유로 재판 일정이 밀렸다. 8월18일 다시 재판이 잡혔지만 개정이 24시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9월10일로 일정을 연기한다는 통보가 왔다.

9월 재판이 재개되고 재판부는 11월10일을 선고기일로 잡았지만 또다시 별다른 설명 없이 기일이 12월로 밀린 상황이다. 재판이 점점 미뤄지면서 피로감도 쌓이고 있다. 생업에 더해 합법화 운동, 재판까지 병행하느라 도이는 "최근 가족들과 제대로 된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지난 여름 과로로 쓰러져 머리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도이는 재판이 미뤄지고 있는 것을 '긍정적' 징조로 바라보고 있다. 이전까지 사법부는 문신을 의료행위로 판단한 기존 판례에 기대어 별다른 고민 없이 판결을 내렸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된 고민을 시작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도이는 "그동안 사법부에 지금의 상황이 상식적인지에 대한 고민을 부탁한 것인데 이제야 고민을 시작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눈썹 문신을 주로 해 온 '문신사' 이화정씨(가명)의 작업실도 외부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건물 깊숙한 곳에 있었다. 출입구엔 불투명한 유리만 붙어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5년 전 경찰의 집중 단속으로 적발돼 수사를 받게 되면서 화정씨는 더 움츠러들게 됐다. 그는 "이제는 지인에게도 이 일을 한다고 이야기 하지 않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화정씨는 도이와 다르게 현재 대법원의 판단 만을 남겨두고 있다. 1심과 2심에서 판사들에게 문신에 대해 설명하며 치열하게 다퉜지만 결국 패소했다. 연이은 패소 판결을 받았을 때 화정씨는 다른 직업을 찾을까도 생각했다. 주변에서 '그 정도 실력이면 해외로 나가서 일을 해보자'는 제안도 있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의 조언과 주변의 도움으로 끝까지 싸움을 하기로 했다. 본인 스스로도 '이 일이 왜 불법이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는 "문신을 불법화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과거의 오래된 판례가 우리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라며 "누군가 한명은 끝까지 재판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정씨의 경우도 도이와 마찬가지로 재판이 기약이 없이 밀리고 있다. 한 없이 길게 느껴졌던 1, 2심도 1년이 걸리지 않아 마무리됐는데 대법원은 3년이 넘게 사건을 '검토'만 하고 있다. 화정씨 사건의 대법원 심리진행상황에는 2019년 11월13일 '상고이유 등 법리검토'를 시작한다고 기록된 이후 줄곧 '검토'라는 단어가 반복해 등장했다. 1년이 지난 2020년 11월12일 '법리·쟁점에 관한 종합적 검토중'이라는 기록이 추가됐고 또 1년이 지난 올해 10월12일에는 '법리에 관한 심층 검토중'이라는 10글자가 또 새겨졌다.

다만 화정씨도 재판이 길어지는 것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했다. 법원의 고민이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기존의 판례가 합당한지 꼼꼼히 살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그의 2심 재판에서는 재판부의 이런 고심이 판결문에 담기기도 했다. 2심의 주심은 항소심에서는 이례적으로 '원심 법원 다수의견 어디를 보더라도 침습행위(문신)는 반드시 의료인이 행해야 하는 의료행위라는 점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취지의 소수의견을 판결문에 첨부했다.

이렇게 법원의 판단이 한없이 유보되고 있는 가운데 세상은 변하고 있다. 문신을 합법화를 시도하는 법안이 계속해 발의되고 있고 문신을 의료행위로 묶어두는 판례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도이는 "문신업으로 사업자 등록도 가능해서 세금을 낼 수도 있는데 불법으로 묶어두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라며 "행정부는 규제 개혁 샌드박스도 진행하고 있고 입법부도 합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사법부는 가장 뒤쳐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화정씨도 눈썹 문신이 일반화 됐고 사실상 '의사가 하는 눈썹 문신'은 전무한 상황임에도 법원이 구시대적인 판결이 목을 매고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재판을 준비하면서 눈썹 문신 시술을 하는 병원 100여곳을 조사해봤지만 의사가 직접 시술을 하는 곳은 1곳도 없었다면서 병원에서도 문신사들이 채용돼 눈썹 문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부작용' 문제를 우려해 문신을 의료행위로 규정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문신 관련 기술과 장비가 발전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사례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며 "부작용 등이 걱정이 된다면 합법화를 하고 위생 문제들을 점검하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도이와 화정씨는 자신들에게 씌어진 '불법'의 굴레가 벗겨진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묻자 모두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이는 자신의 일이 합법화되면 현재 그의 작업실을 두텁게 가리고 있는 커튼을 모두 걷어 올리고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화정씨도 건물 깊숙한 곳에 매장을 차렸던 과거에서 벗어나 번화가에 '로드숍'을 차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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