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에 화상 입고 자택 현관에서 발견된 女, 왜?

입력 2021.10.16 08:00수정 2021.10.16 11:02
자식이 부모한테 그럴 수 있냐?
전신에 화상 입고 자택 현관에서 발견된 女, 왜?
© News1 DB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사랑하는 자식에 의해 단 하나뿐인 생명을 잃게 된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이모(당시 24)씨는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카드값을 '돌려막기'로 변제하다 채무가 8000만원 상당에 이르렀다.

고민 끝에 어머니 A씨에게 사실을 털어놓자 A씨는 "함께 죽자"며 강하게 질책했다. 압박감과 불안을 느끼던 이씨는 집에 불을 내 엄마와 함께 죽기로 마음먹었다.

이씨는 3일 만에 행동으로 옮겼다. 페인트 가게에서 시너 2통을 사 집으로 가져왔다. 2018년 10월4일이었다.

이씨는 어머니가 샤워하는 사이 욕실 입구에서부터 주방, 거실 바닥까지 시너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 붙인 종이를 바닥에 던졌다. 불은 순식간에 온 집으로 번졌다.

불길을 본 이씨는 무서운 마음에 집에서 바로 빠져나왔다. 불을 붙인 직후라 연기만 다소 흡입한 상태였고 화상은 입지 않았다.

반면 A씨는 현관문 입구 쪽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씨가 집 밖으로 도망치면서 현관문을 닫았던 터라 어머니는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A씨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일주일 넘게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다 화염화상, 패혈증 쇼크 등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이씨는 애초부터 어머니와 함께 목숨을 끊으려 한 게 아니며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다는 정황이 속속 확인됐다.

이씨는 시너를 살 때도 용도를 물어보는 판매자에게 "엄마의 심부름"이라며 자연스레 거짓말했다. 조사를 받을 때도 "엄마가 부탁해 시너를 사다 줬는데 엄마가 시너로 불을 낸 것 같다"고 허위진술했다.

수사기관, 언니, 채권자들에게 A씨의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진술을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A씨의 극단선택으로 은폐하려는 태도도 보였다.

그런데 A씨가 이씨의 빚을 갚아준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A씨는 이씨가 2014년에도 도움을 청하자 수천만원을 갚아줬고 이번에도 딸의 빚을 갚기 위해 식당에서 12시간 넘게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존속살해와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심에서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이씨가 초범인 점, 뇌사 상태인 남동생을 A씨와 함께 간병해온 점, 언니와 친척들이 선처를 탄원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삶을 돌이켜 보면 사랑하는 자식에 의해 단 하나뿐인 생명을 잃게 된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며 "범행의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중형을 선고했다.

이씨는 형량이 너무 무겁다고, 검찰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고 각각 항소했는데 항소심에서는 형량이 5년이나 줄었다.


2심 재판부는 이씨가 학창 시절 A씨로부터 여러 차례 학대를 당한 점, 8000만원 빚 고백에 A씨의 질책이 계속되자 해리장애와 유사한 스트레스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거론하며 "범행이 다소나마 A씨로 인해 촉발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이씨에게 "돌아가신 어머니도 재판부 결정을 허락할 것 같다"며 "17년 후 건강한 모습으로 출소해 어머니에게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씨는 징역 17년에도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형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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