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월세만 4800만원입니다. 극단 선택도 남 얘기가 아니에요."
서울 종로구 번화가에서 8년째 족발집을 해온 안모씨(35)가 말했다. 최근 잇따른 자영업자들의 극단적 선택 소식을 들으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한편, 자신도 그 심정을 공감한다는 것이다. 추석을 맞은 안씨는 "계약 기간만 끝나면 빚쟁이로 나앉을 신세인데 명절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한숨을 쉬었다.
■스스로 세상 떠난 자영업자 22명…무너진 자영업자
22일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생활고에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자영업자는 최소 22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비대위는 최근 월셋방 보증금을 빼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세상을 떠난 마포구 맥줏집 사장의 사연이 알려진 후 실태조사에 나섰다.
비대위는 지난 17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들을 위한 합동 분향소를 마련했다. 경찰과 약 7시간에 걸친 대치 끝에 분향소를 설치한 김기홍 비대위 대표는 "살려달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자영업자들의 심정을 알아달라"라고 호소했다.
세상을 등진 자영업자들의 비극적인 사연은 동종 업계 종사자들에게 더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종로에서 10여년째 곱창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58)는"마포 맥줏집 사장님 사연 보는데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더라"라며 "나도 수개월 째 월세를 못내 보증금 5000만원 중 80%를 깎아 먹었다. 빚이 생기니까 우울해지고 의욕을 잃는다"라고 털어놨다.
내년 상반기까지 임대 계약이 묶여있는 족발집 안씨는 가게를 내놓아도 팔리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버티는 처지다. 안씨네 매장은 한달 임대료만 800만원이 넘는다. 그는 손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조리와 서빙, 계산 등 가게 일을 모두 혼자 하고 있다고 한다.
■폐업한 매장 45만개…인원제한 풀려도 희망 없다
자영업자의 경영난은 수치도 명확히 드러난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진 지난 1년 6개월 동안 자영업자들은 66조가 넘는 빚을 떠안았다. 폐업한 매장의 수만 45만3000개다.
이달 들어 모임제한 인원이 완화되고 백신 인센티브가 시행되고 있으나 자영업자의 '보릿고개'는 끝나지 않고 있다. 추석 명절이라고 해도 번화가 유동인구는 줄고 시민들의 지갑은 열리지 않고 있다는 게 자영업자들의 설명이다.
곱창집 이씨는 "추석을 앞두고 저녁 6인 모임까지 허용됐지만 정작 4인 이상 손님은 하루 한 팀 정도"라며 "연휴 동안 문 닫지 않고 장사를 하는 이유는 손님이 있어서가 아니라 월세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서"라고 푸념했다.
저녁시간인데도 매장 앞에서 담배를 태우던 조개구이집 업주 한모씨(68)는 "솔직히 인원 제한이 완화되면서 상황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적자인건 마찬가지"라며 "직원들 다 내보내고 식구끼리만 가족 장사를 하니까 이만큼 버티지 아니었으면 진작 무너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씨는 "버티다 못해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라며 "언제쯤 상황이 나아질지 막막하기만 하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