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30대 남성 A씨의 근무지는 서초동 법조타운이다. 변호사인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그는 거액의 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40억원이나 되는 그 빚은 아버지 사무실 명의의 차용증을 위조해 지인들에게서 빌린 돈이다. 유흥비와 생활비 등으로 호사스럽게 탕진하던 A씨는 그 빚을 '돌려막기'로 갚아나갔으나 한계가 있었다.
빚에 쪼들리던 A씨는 해서는 안될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채무 명의자인 아버지를 숨지게 해 빚을 털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A씨는 지난해 6월 휴대전화에서 '둔기로 내려치면' 같은 문장과 단어를 검색했다. 그렇게 둔기를 구입해 차량에 보관은 했으나 맨정신으로 아버지에게 범행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A씨는 신경정신과 의료기관을 찾아 불면증 약을 처방받았다.
그는 서초동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버지를 태운 A씨는 지하철역 근처에서 함께 내렸다가 "일이 생겨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고 먼저 오른 다음 조금 뒤 차에 올라탄 부친을 향해 둔기를 휘둘렀다.
그런데 아버지는 머리에 무엇인가가 부딪힌 것으로 착각하고 "피가 난다"며 아들에게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병원 주차장에 도착한 A씨는 둔기를 마구 휘둘렀다. 아버지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신고하지 않겠다"고 안심시키자 도로 인근에 내려주고 도주했다.
A씨는 존속살해미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등 무려 다섯 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020년 6월까지 약 1년10개월간 사문서 98장을 위조해 27명에게 사기 행각을 벌였다. 원금에 이자를 붙여 돌려주겠다고 속여 111억원을 뜯어냈다. 그래도 어찌어찌 갚아 현재는 16억원 정도만 남아있다.
재판부는 "범행의 경위와 방법, 지속성과 반복성, 피해자 규모와 피해 액수 등으로 볼 때 죄질이 극히 좋지 않다"며 "특히 아버지의 생명을 뺏으려 한 행위는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질타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박상구)는 17일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하고 피해자들에게 8억3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아들의 패륜에 몸과 마음을 다친 아버지는 그래도 법정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