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누나를 돌보기 시작한 뒤 자식 둘이 태어났는데 모두 선천적 장애가 있었습니다. 수입도 일정하지 않은 상황에 장애인 3명을 돌보는 현실이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지적장애 1급인 친누나를 결박하고 굶겨 결국 숨지게 한 동생 A씨(39)가 항소심에서 눈물을 흘리며 뱉은 말이다.
자신의 사정을 봐달라던 A씨는 "돌볼 수 없는 상황에도 장애인 정부지원금을 노려 범행한 것 아니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누나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나 B씨(41·여)의 정부지원금 대부분이 B씨를 위해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A씨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끝내 원심보다 높은 실형을 선고받은 A씨는 상고해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천안시 동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조모와 부모, B씨와 A씨 가족은 함께 생활해 왔다.
그러던 2015년 A씨의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모친이 집을 나간 상황에서 조모마저 유명을 달리하자, B씨를 돌보는 일은 전적으로 A씨 부부가 맡게 됐다.
A씨의 모친은 아들의 사정을 생각해 B씨를 장애인복지시설에 위탁하자고 제안했지만, 통장 잔고가 번번이 바닥을 드러내던 A씨에게 B씨의 정부지원금 100여만 원은 포기할 수 없는 돈이었다.
수천만 원의 카드빚까지 떠안고 있던 A씨는 이런 이유로 끝내 가정 돌봄을 고집했고, 사건은 작은 폭력에서 시작해 시간이 흐를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시작은 B씨가 상한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겠다며 손목과 발목을 잠시 묶어두는 정도였다. 지난 2019년 아내의 임신 등으로 B씨만 남겨지는 시간이 늘면서, 집을 어지르는 정도가 심해졌다는 구실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결박을 정당화 하던 A씨는 결국 B씨의 종아리와 허벅지까지 묶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게 묶고, 테이프로 입을 막다 못해 목 뒤까지 감아놓기도 했다. B씨는 A씨 부부 사이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난해 2월부터는 최대 사흘간 물도 마시지 못한 채 홀로 묶여 있었다.
결국 80㎏에서 28㎏까지 급격히 체중이 줄어들 만큼 쇠약해진 B씨는 지난해 2월 18일 영하의 날씨 속에서, 집 화장실 앞에 묶인 채 영양결핍과 저체온증으로 숨을 거뒀다.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대전지법 천안지원 제1형사부는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모면하고자 보호자를 자처하고도, B씨를 가정의 짐으로 여겨 비극적인 죽음을 맞도록 했다"며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1심에서 별다른 변론을 하지 않았던 A씨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누나를 돌보기 위해 노력했고, 남은 아내와 장애가 있는 자식들을 생각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처한 사정과 장애인 복지시스템의 맹점을 일부 고려하기도 했지만, 검찰의 항소 취지에 따라 1심보다 형량을 높였다.
지난 4월 2일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백승엽)는 A씨에게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어려움이 많았던 사정은 이해하나 범행이 매우 비인간적이고, B씨의 지원금도 B씨를 위해 거의 쓰이지 않았다"며 "국가의 복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원인이 있더라도, 주된 책임은 피고인에게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