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과거 두 번이나 보이스 피싱을 당했던 피해자 중의 피해자 5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12월 가해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보이스 피싱을 시작했다.
은행 직원을 사칭해 저금리 대환 대출로 피해자들을 현혹한 뒤 실제 신청을 받으면 피해자들이 기존에 대출을 받았던 또다른 은행 직원을 사칭해 "기존 대출금을 갚지 않으면 계약 위반이니 현금을 인출해 갚아야 한다"고 사기를 치기 시작한 그다.
그렇게 그는 한 달 만에 23차례에 걸쳐 피해자 17명으로부터 4억2168만원을 뜯어냈다.
#20대 남성 B씨 역시 같은 방법으로 지난달 13일부터 15일까지 단 사흘 만에 피해자들에게 8368만원을 뜯어냈다. 경찰에 붙잡힌 B씨는 "구직사이트를 보다 고수익 아르바이트라고 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자백했다.
#또 다른 20대 남성 C씨는 지난 3월 보이스 피싱 일당에게 본인 명의의 계좌를 빌려주고 현금을 인출해 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챙기다 은행 직원에게 발각되기도 했다. 당시 C씨는 자신이 취업준비생이라며 거듭 선처를 호소했다.
◇제주서 5년간 2226건·300억원 피해…대부분 '대출 빙자'
이처럼 제주에서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검은 유혹에 이끌려 소위 '보이스 피싱'으로 불리는 전화금융사기에 손을 뻗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은 음성(Voice)과 개인 정보(Private Data), 낚시(Fishing)를 합성한 용어로, 주로 금융 기관이나 유명 전자 상거래 업체를 사칭해 불법적으로 개인의 금융 정보를 빼내 범죄에 사용하는 범법 행위를 말한다.
이 같은 보이스 피싱 범죄는 최근 5년 간 제주에서 총 2226건·295억3400만원 규모로 발생했다.
연도별로 보면 Δ2016년 304건·24억9300만원 Δ2017년 378건·34억3400만원 Δ2018년 505건·55억2600만원 Δ2019년 565건·95억4600만원 Δ지난해 474건·85억3500만원이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4개월 만 해도 218건·45억5000만원의 피해가 났다.
피해 유형을 보면 대부분 대출빙자형이다.
금융기관 직원 등을 사칭해 파격적으로 낮은 금리나 높은 한도로 대출해 주겠다고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수법이다.
실제 지난해 제주에서 발생한 보이스 피싱 피해 건수 474건의 86.6%에 달하는 406건(72억4000만원)이 이 같은 대출빙자형 보이스 피싱에 당한 사례로 파악됐다.
◇'계좌이체→대면편취' 수법 진화…경찰, 집중 단속 주력
최근에는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현재 경찰은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기존 계좌이체형이 아닌 대면편취형 보이스 피싱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 자체를 차단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보니 더이상 대포 통장을 이용해 돈을 송금 받지 않고 피해자를 직접 만나 현금을 전달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 현행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계좌를 이용한 송금·이체 행위만 전기통신금융사기로 규정해 계좌를 동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실상 법·제도에 사각지대가 있는 상황 속에서 경찰은 단속에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수사·형사 간 협조를 바탕으로 계좌 분석 중심의 기존 수사 뿐 아니라 초동수사나 추적·탐문수사와 같은 현장 수사 역량을 강화해 범인 검거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코로나19 장기화로 국민경제가 위축된 가운데 보이스 피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앞으로 피해 예방을 위한 홍보전략도 강화해 범죄 발생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