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뉴스1) 이정민 기자,이지선 기자 =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된 익산 약촌오거리 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10년을 옥살이한 최모씨(37).
사건 당시 15살이었던 소년은 진범을 목격했다는 진술 하나로 경찰의 덫에 걸려들었다.
사건 현장에서 다방 커피 배달 오토바이를 몰던 그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뛰어가는 것을 봤다”고 증언하는 등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소년을 유일한 목격자에서 한순간 살인자로 둔갑시켰다. 고문과 구타 등 강압수사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사건을 받아본 검찰은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이 소년을 구속기소했다. 법원은 최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수사당국의 강압·부실수사로 소년은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어야 할 청춘을 쇠창살 안에서 보내야 했다.
앳된 소년에서 건장한 성인이 된 최씨가 사회로 나온 뒤에는 많은 변화가 일었다.
경찰 강압에 못 이겨 스스로를 살인자라고 낙인찍어야 했던 그는 출소 3년 뒤 “나는 진범이 아니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세상에 알렸다.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도화선이 된 건 박준영 변호사와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가 최씨와 함께하면서다. 최씨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2016년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냈다.
진범인 김모씨(40)도 법의 심판대 앞에 섰다. 김씨에게는 2018년 대법원의 15년형이 확정되며 사건 발생 18년 만에 단죄가 내려졌다.
무죄 이후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에서도 법원은 전날(13일) 16억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통해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최씨에게 살인자라는 누명을 씌운 당시 수사 경찰관들은 어떠한 변화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
최씨는 “담당 형사 5명 정도가 처음에 바로 경찰서로 데려간 게 아니라 여관으로 가서 머리를 계속 때렸다”며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로 묶어서 바닥에 눕혀 놓고 때렸다”고 자신의 거짓 자백에 대한 배경을 회고했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들은 여전히 오리발을 내밀며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나온 경찰청장 등 윗선의 형식적인 사과가 전부였다.
최씨 진술대로 이 사건에 참여한 형사는 5명이다.
이들 중 고참이었던 형사반장은 퇴직했고, 막내 형사는 재심이 진행되던 2016년 9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막내 형사는 재심 공판의 증인으로 나와 “사건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후 가족과 지인들에게 “괴롭다. 죽고 싶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을 문자로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나머지 3명의 경찰관은 여전히 현직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영 변호사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반장은 유감은커녕 아직도 최씨가 진범이며, 이미 지급한 형사보상금도 환수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 당사자들에게 사과하면 소송을 취하하고, 국가상대 소송만 하겠다고 제안을 했다”며 “하지만 경찰은 안하무인격 태도를 취해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