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상학 기자 = 하필 그날 그곳을 지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지난해 1월26일 새벽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배모씨는(54) 자신의 집에서 소주 1병을 마신 뒤 나와 주차된 자동차를 손으로 치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때마침 배씨의 집 앞을 지나가던 A씨와 B씨가 배씨의 눈에 띄었다. 배씨는 갑자기 연인 관계인 A씨와 B씨에게 다가가 어깨로 A씨의 어깨를 두 차례 밀치며 시비를 걸었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A씨는 배씨에게 항의하려 했으나, 여자친구 B씨가 이를 말리면서 이들은 되레 배씨에게 사과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도 배씨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흉기를 들고나와 두 사람이 이동한 방향으로 쫓아갔다.
이들을 발견한 배씨는 A씨에게 달려들었고, 몸싸움을 벌이던 중 A씨의 왼쪽 가슴을 1차례 찔렀다. 또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던 B씨의 얼굴도 두 차례 때렸고, A씨는 치료 도중 숨졌다.
배씨는 수사기관에서 A씨가 자신에게 욕을 해 화가 나 쫓아갔다고 진술했고, 재판 과정에서는 살인이 고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몸싸움 도중 A씨가 우연히 칼에 찔린 것이라면 A씨가 다량의 피를 흘리며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놀라고 당황했어야 하는데, 배씨는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며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B씨도 법정에서 "배씨의 범행 후의 행동이 무언가를 해치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또 배씨는 분노조절장애, 양극성 정동장애를 앓고 있다며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경을 주장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배씨가 범행 이전까지 관련 치료를 받은 적 없는 점, 수사기관에서 범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을 이유로 "피고인이 정신병적 증상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재판부는 배씨가 피해자 및 피해자의 유족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피해 회복에 대한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범행 당시 집행유예 기간이었던 점을 고려해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검찰과 피고인 측은 쌍방 항소했고, 한 차례 공판기일을 거쳐 오는 13일 배씨의 2심 선고공판이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