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받아도 된당께!".. 국밥값 2000원 내린 착한식당

입력 2021.01.04 07:01수정 2021.01.0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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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받아도 된당께!".. 국밥값 2000원 내린 착한식당
문납순 할머니.© 뉴스1


"더 받아도 된당께!".. 국밥값 2000원 내린 착한식당
옛날국밥과 생선구이 집밥.© 뉴스1


"더 받아도 된당께!".. 국밥값 2000원 내린 착한식당
식당 전경.© 뉴스1


[편집자주]신축년 새해가 밝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짙은 그림자는 걷히지 않고 있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소중한 일상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위드코로나시대'. 뉴스1광주전남본부는 어려움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시민'들을 통해 희망을 찾아보고자 한다.

(광주=뉴스1) 고귀한 기자 = "오메, 이라고 폴아서 한 푼이나 남겄소. 1000원이나 2000원은 더 받아도 된당께!"

광주 동구청 인근에 있는 '옛날 국밥 한그릇'(제봉로 82번길)에서 배를 채운 손님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이곳은 '가격을 올리라'는 손님들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는 '가격을 유지하겠다'는 할머니의 훈훈한 실랑이(?)가 심심찮게 목격된다.

국밥집 주인인 문납순(71) 할머니는 "하루에 마는 국밥 수만큼이나 자주 듣는 얘기일 뿐"이라며 소박한 웃음을 지었다.

문 할머니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해 4월 초부터 국밥 등 음식 가격을 기존 8000원에서 '커피 한 잔 값'인 6000원으로 내렸다.

'코로나19로 국밥과 곰탕값을 8000원에서 6000원으로 내립니다. 맛있습니다. 많은 이용바랍니다'란 안내문도 문 할머니가 직접 적어 가게 곳곳에 붙여놨다.

하루하루 치솟는 재료값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국민 모두가 힘든데 국밥이라도 마음껏 먹고 다 같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남편 안상율(71) 할아버지의 제안에 따라 10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그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문 할머니 부부는 2년 전부터 이곳에서 국밥집을 운영했다. 경영 악화로 광산구 첨단지구에서 수년간 운영하던 고깃집을 접은 뒤다.

장성한 자식 내외는 '인제 그만 쉬셔도 된다'며 극구 만류했지만, '놀면 치매만 걸린다', '일주일만 쉬어도 몸이 근질댄다' 등 핑곗거리를 둘러대 간신히 2018년 11월쯤부터 이곳에 문을 열게 됐다.

전문적으로 국밥 등 내장요리를 배워본 적이 없는 문 할머니지만, 그간의 식당 운영 경험과 뛰어난 손맛 덕분에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와 본 사람은 없다'는 소릴 들을 정도로 나름 정평이 나 있다.

이곳의 음식 조리와 설거지, 서빙은 모두 부부의 몫이다. 할머니는 주방에서 요리를, 할아버지는 음식을 나른다.

노부부에겐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지만 보조 인력 채용은 꿈도 꿀 수 없다.

매일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로 북적대는데도, 문 할머니 등 부부의 정작 평일 하루 매출은 10만~12만원 남짓. 6000원짜리 국밥 20그릇을 팔아서 버는 돈이다.

매달 80만원가량의 월세와 재료 값을 지불하고 나면 남는 돈은 거의 없는 셈이다.

일주일에 세 번은 이곳을 찾는다는 직장인 김선진씨(24·여)는 "손님 입장에선 싸고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지만, 어르신들이 고생하시는 걸 보면 한편으로 안쓰럽다"며 "요즘 식자재값도 비싸다던데 돈은 벌면서 장사는 하는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문 할머니의 가게가 손님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저렴한 가격뿐만이 아니다.

추억이 서린 정성 가득한 음식도 이곳의 특징이다.

문 할머니는 손주들이 먹을 음식을 내놓는다는 생각에 식자재 대부분은 국내산을 고집한다.

특히 이 가게의 메인 요리인 옛날국밥은 문 할머니가 어릴 적 먹었던 국밥 맛을 잊지 못해 기억을 더듬어 가며 따라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국밥은 뿌연 국물의 국밥이 아닌, 빨간 국물의 옛날식 국밥이다.

내장 외에도 큼지막하게 썬 돼지고지와 고사리, 버섯이 듬뿍 들어가 얼큰함을 더한다.

또 저렴한 뚝배기 감자탕(5000원), 돼지주물럭 (5000원), 불고기(7000원), 생선구이 집밥(7000원) 등 1인분 주문이 가능해 음식 선택의 폭이 넓은 것도 이곳 만의 장점이다.

인근 회사에 다닌다는 박진형씨(43)는 "매일 점심시간이면 메뉴를 두고 동료들과 고민하게 되는 데 이곳에선 싼 데다 눈치도 안 보고 주문할 수 있어 편하다. 특히 음식을 만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면 부모님 생각이 나 더 자주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 할머니의 신축년(辛丑年) 새해 소망은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자식들과 손주를 비롯한 국민모두가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문 할머니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국밥 한 그릇 먹어주겠다고 가게를 찾아주는 게 되레 고마울 따름이다"며 "아직 다행히도 저와 남편 모두 건강에 문제가 없고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릴 자신이 있는 만큼, 코로나19가 없어지고 경제가 회복되면 자연스레 매출도 오르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당분간 가격을 올릴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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