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광고판서 본인 사진 본 女 비명, 20년 前에..

입력 2020.12.28 07:49수정 2020.12.28 09:21
편의점의 기적!
편의점 광고판서 본인 사진 본 女 비명, 20년 前에..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편의점 광고판서 본인 사진 본 女 비명, 20년 前에..
(GS리테일 제공)© 뉴스1


편의점 광고판서 본인 사진 본 女 비명, 20년 前에..
(세븐일레븐 제공)© 뉴스1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던 지난 10월, 한 편의점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우연히 집 앞 편의점 CU에 들렀던 강영희씨(24·가명)는 계산대 광고판에 송출되고 있던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알아보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는 20년 전 부모를 잃었던 '장기실종아동'이었다.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덮치면서 사람과 사람 간 거리는 어느 때보다 멀어졌다. 60대 노모와 함께 살던 발달장애인 아들이, 어머니가 숨을 거두고 다섯 달이 흘러서야 발견됐던 '방배동 모자 사건'이 알려지면서 세상에 충격을 줬다.

각박하고 휑해진 세상이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울리는 희소식도 있다. 편의점 GS25의 한 점주는 길을 잃은 꼬마에게 선뜻 과자를 내어주었고, 강영희씨는 CU의 도움으로 20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한 집 건너 한집' 꼴로 흔한 편의점이 촘촘한 '안전망'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0년 전 잃어버린 내 딸, CU가 찾았다

2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BGF리테일 본사는 지난 10월 한 CU 점포의 전화를 받고 비상이 걸렸다. 아동권리보장원과 공동으로 진행한 '실종아동 찾기 캠페인'을 통해 장기실종아동 강영희씨가 발견된 것이다.

강씨는 지난 2000년 6월 집을 나섰다가 그길로 가족과 생이별했다. 강씨의 친부모는 백방으로 강씨를 찾아 헤맸지만, 끝내 어린 딸을 다시 볼 수 없었다.

당시 네 살배기였던 강씨는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믿었다고 한다. 실종 이후 아동보호센터로 입양된 그는 성인이 될 때까지 친부모가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 장기실종아동과 가족은 그렇게 삶이 엇갈린다.

강씨 가족의 상봉은 20년 만에 거짓말처럼 이뤄졌다. CU가 전국 1만4000개 점포에 송출한 강씨의 어릴 적 사진을 성인이 된 강씨가 우연히 본 것이 기적이 됐다. 그의 부모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올해 8월 아동권리보장원에 딸을 사례관리대상자로 등록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추석 연휴 전날 집 근처 CU를 찾았던 강씨는 계산대 POS 기기에서 자기 사진을 발견했다. 이때까지도 자신은 실종아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강씨는 BGF리테일 본사에 전화해 '사진을 내려 달라'고 따졌다고 한다. 그렇게 강씨는 진짜 가족을 다시 만났다. 꼬박 20년 3개월 만이었다.

윤혜미 아동권리보장원장은 "실종아동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이나 주변인이 아닌 당사자가 정보를 인지하고 직접 잃어버린 가족을 찾은 것은 드문 사례"라며 "실종아동을 찾기 위한 BGF리테일의 홍보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학대아동 보호하고, 길 잃은 아이엔 과자 쥐여준 편의점

편의점은 길 잃은 어린이나 학대아동에게 '우산'을 씌워주기도 했다.

경남 창원의 한 가정에서 쇠사슬에 묶여 학대받다 탈출한 한 초등학생을 보호했던 'CU창녕대합점', 학대 아동을 발견하고 경찰서에 인계했던 'GS25마포한림점'이 대표적이다.

업계와 경찰에 따르면 CU창녕대합점은 지난 5월 부모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다 도망친 초등학생 A양(9)을 최초 발견자인 B씨와 함께 보호해 경찰서에 인계했다. CU 근무자는 A양의 상처를 치료하고 식사까지 챙겨주며 A양을 진정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GS25마포한림점도 지난 7월 학대아동을 보호한 뒤 경찰에 신병을 인계했다.

하마터면 미아가 될 뻔한 위기 아동을 두 차례나 구한 사례도 있다. GS25 청라호반점 경영주 박석필씨의 이야기다. 박씨는 지난 4월 점포에 들어온 한 꼬마가 과자 봉지를 집어 든 채 서성이자, 옆으로 다가가 고사리손에 과자를 쥐여줬다고 한다. 차분히 아이를 달래며 이름과 학교, 주소를 물어본 그는 안전하게 아이를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해당 어린이는 평소 '아이돌봄 서비스'를 받는 아동이었다. 아이돌봄 담당자가 매일 등하굣길에 데려다줬지만, 그날은 아이가 일찍 집에서 나오는 바람에 담당자를 만나지 못하고 길을 헤매다 GS25 편의점에 들어왔던 것이다. 박씨가 나서지 않았다면 진짜 '미아'가 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박씨의 선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혼자 편의점 매장을 돌아다니는 세살 배기 어린이를 보호했다가 엄마의 품에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 어린이는 근처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길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아예 편의점 앞 테이블을 '학부모 쉼터'로 내줬다. 주변 유치원이나 학원 차량이 편의점 앞에 정차할 수 있도록 하고 부모들이 테이블에 앉아 자녀를 기다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박씨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고 그의 점포를 '전국 아동지킴이집'으로 선정했다.

◇'아동지킴이' 자처하는 편의점…"4만 점포가 촘촘한 안전망 됐다"

편의점 업계는 실종아동, 학대아동의 '보호소'를 자처하고 있다. 전국 4만개가 넘는 점포들이 촘촘한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편의점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그 효과도 배가 됐다는 평가다.

BGF리테일은 '창녕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전국 아동실종 예방시스템인 '아이CU'에 아동학대 긴급신고 기능을 추가했다. CU 근무자는 점포 내외부에서 아동이 학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을 목격했을 때 계산대 POS를 통해 즉시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

실종아동 찾기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BGF리테일은 지난 2018년부터 업계 최초로 아동권리보장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전국 장기실종아동을 찾고 있다. 실종·유괴 예방 포스터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것은 물론 등하굣길 안전벽화 조성, 결제단말기·키오스크 장기실종아동 찾기 콘텐츠 송출 등이 그 예다.

GS25는 경찰청과 손잡고 서울·인천 등 수도권 600여 점포에서만 운영했던 '아동안전지킴이집'을 3000개 점포로 확대했다. 아동안전지킴이집으로 지정된 점포는 학대아동이 편의점을 방문하거나 의심 사례를 발견하면 일차적으로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한 뒤 경찰에 인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GS리테일은 올해 연말까지 아동안전지킴이집 점포가 전국 1만2000개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븐일레븐도 11년째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도담도담' 캠페인을 이어오고 있다. 편의점 주요 PB상품 11종에 아동학대 예방 문구를 넣어 구매자가 아동학대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고 신고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학대·위기아동을 보호하는 '아동안전지킴이집'도 12월 기준 8100개로 늘었다.


이마트24은 전국 매장 출입구에 '아동학대 신고 포스터'를 부착하고, 카운터 옆 계산대 모니터에는 캠페인 이미지를 상시 노출하고 있다. 또 디지털 사이니지가 설치된 750여개 매장에는 경우 포스터 화면을 하루 100회 이상 반복 송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이 학대아동, 실종아동 등 위기에 처한 어린이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에 동참하는 가맹점주와 소비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단순히 상품을 파는 가게의 역할을 넘어 사회의 든든한 '안전망'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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