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속전속결 재가, 검찰총장은 소송거는 나라

입력 2020.12.17 13:09수정 2020.12.17 15:10
이제 文-尹 대결 본격화
대통령은 속전속결 재가, 검찰총장은 소송거는 나라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9.7.25/뉴스1


대통령은 속전속결 재가, 검찰총장은 소송거는 나라
문재인 대통령. /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최은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2개월 정직 징계안을 재가하면서 '불신임'을 공식화했지만 윤 총장이 곧바로 집행정지 신청으로 불복 행보에 나서면서 '추-윤 갈등'이 '문-윤 대결'로 이어지게 됐다.

문 대통령은 전날(16일)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결정을 재가하면서, 동시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사의표명을 수리할 뜻을 내비치며 '추-윤 갈등'을 일단락하고 정치적인 해법으로도 정면 돌파했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16일 오전 4시10분 윤 총장에 대한 '2개월 정직' 징계를 의결했다. 이어 추 장관은 오후 5시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에게 징계위 결과에 대해 보고하고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제청했다.

70분간 추 장관과 면담한 문 대통령은 오후 6시30분, 징계를 재가하면서 윤 총장의 '2개월 정직' 징계를 발효했다. 당초 징계위 결정에 대한 송달 등 행정적 절차로 대통령 재가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징계위 결정부터 재가까지 14시간20분 만에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추 장관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검찰총장 징계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게 된 데 대해 임명권자로서 무겁게 받아들인다.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라고 밝혔다.

검사징계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징계 제청을 하면 대통령은 재량없이 그대로 징계안을 재가하고 집행하게 된다는 청와대의 설명이 있었지만, 최종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집행'을 하는 만큼 행정부의 수장인 문 대통령이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추 장관의 자진사의 표명까지 함께 공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추 장관이 "먼저 자진해서 사의표명을 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추 장관 본인의 사의표명과 거취 결단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추 장관이 스스로 물러나는 만큼 윤 총장에게 '동반 사퇴'를 권유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검찰이 바로 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며 "검찰총장 징계를 둘러싼 혼란을 일단락짓고 법무부와 검찰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윤 총장 징계 재가와 더불어 검찰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사실상 윤 총장을 '불신임'한 것을 공식화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윤 총장이 대통령이 재가한 징계에 대해 법적 절차에 들어갈 것을 공식 발표하며 문 대통령과 윤 총장의 대결로 구도가 바뀌게 됐다.

윤 총장은 징계위 결정 직후 법률대리인인 이완규 변호사를 통해 "임기제 검찰총장을 내쫓기 위해 위법한 절차와 실체없는 사유를 내세운 불법 부당한 조치로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과 법치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라며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청와대의 공식 발표 이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사의표명과 관계없이 소송 절차는 진행된다"고 밝혔다. 윤 총장 측은 17일 행정법원에 문 대통령이 재가한 징계의 집행정지 신청과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과 윤 총장의 대결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임명권자와 검찰총장의 정면 대결 구도다.

청와대와 여권 대 야권과 검찰의 구도로 확대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1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법무부, 추미애 장관과의 싸움이었다면, 재가가 난 이제부터는 총장을 임명한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싸워야 하는 것"이라며 "정말 윤 총장이 대통령과 싸움을 계속할 것인지는 윤 총장이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5선 중진의 안민석 의원은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총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하지 않고 대통령과 한판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라며 "(법적 대응은)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전쟁을 선언하는 것이다. 참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윤 총장에 힘을 싣기보다는 징계를 재가한 문 대통령을 정조준하며 정권 책임론으로 몰고 가는 모양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윤 총장이 지난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장일 당시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외압·항명 논란'과 관련,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은 것을 언급하면서 "당시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을 때 (현재 여권은) 인면수심 정권이라고 했는데, 이 정권은 뭐라고 해야 하나 답을 해 달라"고 비판했다.


특히 윤 총장 징계와 관련한 검찰 내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김각영 전 검찰총장 등 9명의 전직 검찰총장들은 전날(16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징계사유가 이러한 절차를 거쳐야만 되는 것이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징계절차로 검찰총장을 무력화하고 그 책임을 묻는 것이 사법절차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연수원 35기 부부장검사들은 전날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법무부 스스로 약속한 충분한 절차적 권리와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았고, 결국 대통령이 강조한 '절차적 공정'은 형해화(形骸化·내용 없이 뼈대만 있게 된다)됐다"라며 "이러한 징계는 검찰총장 임기제를 통해 달성하려고 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바로잡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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