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북한 선전방송을 시청하고, "김일성 잘생겼다"고 말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90대 여성이 약 40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이관용)는 반공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95)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1978년 6월3일 오후 7시40분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지인의 집에서 '김일성이 살던 초가집' '평양 국립극장에서 상영되는 서커스' '북괴군의 행렬'을 약 1시간 동안 본 것으로 조사됐다.
이튿날 오전 10시 A씨는 지인 B씨에게 "김일성은 늙은 줄 알았더니 잘 먹어서 그런지 몸이 뚱뚱하게 살이 찌고 젊어서 40대 같이 보이는데 잘생겼더라"며 "이북에는 고층빌딩이 여기저기 있고, 도로도 잘되어 있더라"고 말을 한 혐의를 받는다.
같은 날 밤 9시 A씨는 시누이의 남편 C씨에게 자신의 집 TV에도 북한 방송이 나오는지 보자고 말을 하며, 북한의 선전활동에 동조한 혐의도 있다.
같은 해 9월 A씨는 반공법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이듬해 3월 징역 10개월 및 자격정지 1년을 확정받았다.
이후 A씨는 지난 5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재판부는 이 사건 수사에 관여한 경찰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하였다고 증명했는데도 유죄판결을 얻을 수 없는 장애가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공소사실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며 "원심의 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검찰도 "원심의 형은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은 A씨의 진술과 증인들의 진술을 근거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며 "원심의 증거 만으로는 A씨의 행위로 인해 국가의 존립 및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중·명백한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경찰관들에게 검거된 후 48시간 이내에 긴급구속에 관한 사후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못한 상태로 구금되어 있었고, 구속영장이 발부된 후에도 불법 구금됐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이 같은 점을 비춰볼 때 A씨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의 임의성을 의심할 사정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금된 상태에서 A씨가 재판을 받은 점을 비춰볼 때 A씨의 법정진술 또한 임의성이 없는 상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며 "법정에 출석한 증인 역시 A씨가 평소 북한에 대해 언급한 바 없고, 지인에 집에 연속극을 보려고 갔다가 우연히 북한방송을 봤다고 진술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