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베트남 국적 20대 아내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혐의를 받는 50대 남성이 2심에서 감형받았다. 범행의 동기와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함상훈 김민기 하태한)는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신모씨(57)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2년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신씨는 지난해 11월16일 오전 경기 양주시 자택에서 베트남 국적 아내 A씨(29)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았다.
신씨와 A씨는 2018년 11월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만나 결혼했는데 성격차이, A씨의 빈번한 금전적 지원 요구를 이유로 다퉈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당일에는 A씨가 '사촌 동생이 있는 경기 이천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언쟁이 벌어졌다. A씨가 화를 내는 신씨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자 신씨는 휴대전화를 뺏으려고 했다.
이에 위협감을 느낀 A씨는 신씨의 접근을 막으려고 흉기를 휘둘렀고, 오른쪽 허벅지를 베인 신씨는 격분해 흉기를 뺏은 뒤 A씨를 찔렀다. 복부 부위를 집중적으로 찔린 A씨는 과다출혈로 숨졌다.
이후 신씨는 사체를 비닐과 천으로 감싼 뒤 자택에서 약 300㎞ 떨어진 전북 완주의 한 감나무밭으로 이동해 A씨 사체와 소지품을 파묻은 것으로 드러났다.
1심은 신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신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고, 검찰은 형이 너무 가볍다고 각각 항소했다.
2심 재판부도 "한국말이 서툴렀던 A씨는 신씨에게 그만하라거나 집을 나가지 않겠다는 말을 꺼내 보지도 못한 채 절망과 무력감 속에 생을 마감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신씨 범행의 잔혹성을 지적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신씨 범행의 동기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며 형량을 줄였다.
재판부는 "A씨는 신씨와 국내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직후부터 일방적으로 금전적·물질적 요구를 지속하다가 일주일도 안 돼 가출했다"며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신씨를 애정과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물질적 필요만을 충족해주는 대상으로 취급했다"고 밝혔다.
또 "A씨의 끊임없는 물질적 요구, 남편과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하려는 신씨의 노력, 그 과정에서 신씨가 억누른 분노와 답답한 심정, 절망감을 잘 알 수 있다"며 판결문에 신씨가 지난해 9월 말부터 약 한 달간 작성한 일기 중 일부를 싣기도 했다.
범행 경위와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사건 당일이 국제결혼중개업체와 약속한 동거기간 3개월이 끝나 A씨가 업체로부터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게 된 첫날인 점을 거론했다.
재판부는 "A씨가 혼인 보증기간이 끝나자마자 가출하겠다고 함으로써 혼인의사가 전혀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신씨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면서 흉기를 휘두르는 등 A씨의 도발적 언동이 신씨가 범행으로 나아간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신씨는 A씨가 혼인의사는 전혀 없이 대한민국 거주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과의 결혼을 이용했단 생각에 인간적인 모멸감과 배신감,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살해에 이르렀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신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는 점, 유족 측이 신씨로부터 장례비와 합의금을 지급받아 선처를 탄원하는 점, 범죄전력이 없는 점 등도 유리한 양형요소로 고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