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편집자 주]
(청주=뉴스1) 남궁형진 기자 = "은퇴 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접한 누에가 새로운 인생을 알려줬습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기암리에서 뽕나무‧오디, 특용작물 재배와 양잠을 하는 귀농 10년차 홍용석씨(65)는 산 중턱 넓게 펼쳐진 밭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우연히 접한 양잠, 은퇴 뒤 진로로 정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35년을 근무한 홍씨가 누에를 처음 접한 것은 정년을 5년가량 앞둔 2011년이다.
은퇴 뒤 명확한 목표는 정하지 않았지만 직장에서 했던 업무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중 함께 식사하던 지인이 색깔이 입혀진 누에가 있다는 말을 꺼냈다.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그 길로 지인과 함께 내수 충북농업기술원 잠사시험장을 찾았고 지인이 말한 컬러 누에는 사실과 다른 것을 확인했지만 그 곳에서 뽕나무와 누에의 건강 효과 등을 듣고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겨 진로를 정했다.
당시에는 격주 주 5일제가 시행됐던 시기로 그길로 그는 일하지 않는 토요일과 휴일, 공휴일 등을 이용해 충북 곳곳을 다니며 뽕나무 농사를 지을 곳을 찾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쉽지 않은 농사 뚝심으로 버텨 이룬 결실
땅을 산 뒤 주말과 쉬는 날 아내와 함께 전국의 농업교육과 견학 등을 다니며 재배 방법 등을 익힌 그는 2012년 처음 뽕나무를 심고 다음해에 오디 재배까지 시작하며 농사꾼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농사는 역시 쉽지 않았다. 뽕나무의 재배 기간이 길지 않지만 누에를 치기 때문에 약을 쓸 수 없고 주변 밭에서 뿌리는 약까지 신경 써야 했다. 날씨 등 영향으로 실패도 적지 않았다.
그나마 업무를 계속하면서 여러 시행착오에도 농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주변을 통해 뽕나무 분말과 냉동 오디 등을 판매하면서 부족하지만 수익이 생기면서 재미와 함께 자리도 잡아갔다.
그러는 사이 평생을 토지 개발과 LH토지주택대학 교수를 한 그가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 가족과 지인, 농장 주변 주민 등의 시선도 달라졌다.
◇농업법인 설립 배테랑 농업인의 길로
2015년 정년퇴직 후 농사에 더욱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외연도 커졌다. 2016년 아내와 함께 농업회사법인 ㈜오누이를 설립, 누에와 오디 생산 판매에 나섰고 특히 지난해부터는 홍잠을 주력 상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홍잠은 완전히 자라 고치를 짓기 직전인 누에(숙잠)를 수증기로 찐 뒤 동결 건조한 제품이다.
아미노산, 오메가3, 지방산 등 영양이 풍부하지만 딱딱해 먹을 수 없는 숙잠 견사단백질 섭취를 위해 농촌진흥청이 고안한 방법으로 알츠하이머 치매와 간암, 간경화, 고지혈증 등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홍씨는 화려한 포장으로 가격을 올리는 대신 주머니를 활용한 단순한 포장 등으로 다른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지역 로컬푸드센터를 판로로 확보했다.
또 청주농업기술센터 지역 농식품 가공품 공동브랜드 '생명애'로 뽕잎 분말과 오디 분말, 오디 잼을 선보이고 있다.
홍잠과 오디 판매가 조금씩 늘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법인 설립 첫해 1000만원 수준인 매출은 꾸준히 성장해 지금은 5000여만원까지 올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도라지, 백수오, 참당귀 등을 재배하며 농사와 회사를 키우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귀농 생활이 어느덧 10년을 맞이하면서 그의 노하우를 배우려는 사람들도 늘어 시 농업기술센터 등을 통해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특용작물기술교육과 양잠 교육을 하는 등 배테랑 농사꾼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홍씨는 "고소득을 올리는 부농은 아니지만 매출이 꾸준히 상승해 유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된다"며 "농장을 바라보면 마음까지 편해진다"고 웃음 지었다.
그러면서 "농장을 이어 받을 사람을 찾는 것이 목표"라며 "농장에서 안정된 수익을 얻게 되면 이곳을 이어받을 사람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