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사상 최대 규모인 시가 400억 원 상당의 코카인 101㎏을 선박을 통해 밀수한 주범으로 지목된 필리핀 국적의 일등 항해사가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이준명)는 마약 밀수 혐의로 기소된 A씨(63)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A씨는 지난해 7월 콜롬비아에서 출발한 홍콩 국적의 9만4528톤급 벌크선 일등 항해사로 승선해 갑판 및 화물에 대한 관리·운용을 담당하던 중, 갑판창고 내 앵커체인에 1㎏ 단위로 포장된 코카인 98개, 총 약 101㎏을 은닉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검찰이 곧바로 항소했다.
검찰은 1심에서 A씨가 당시 불상자와 공모해 시가 405억 원 상당의 코카인을 운반 및 관리했다며 선박항해기록장치(VDR) 녹음 파일을 핵심 증거로 제시했지만, 재판부는 증명력이 부족하다고 일축했다.
검찰이 제시한 A씨가 “코카인 잘 있냐”는 등 마약을 직접 언급했다는 녹취록과 파일은 여러 통역사들과 검증인들의 검증 결과 낮은 음질과 잡음으로 정확한 대화를 식별할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A씨가 일등 항해사이긴 하지만 이 사건 마약을 자유롭게 회수할 수 있는 유일한 선원이 아니고, 이들의 휴대전화 등 소지품에서 마약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운 이유로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도 1심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코카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대화를 나눴다”며 심리미진 등을 이유로 항소한데 대해 “4회에 걸친 공판과 필리핀 언어능력자 및 통역인들의 공판 및 수사 참여 등에서 심리가 미진했다고 볼 수 없다 ”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VDR 녹음파일의 음질을 개선한 뒤에도 통역인들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정확한 감정이 어려웠고, 검찰이 ‘코카인’이라고 말했다는 부분이 ‘오케이’와 구분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며 “설령 코카인에 대한 대화였더라도 이것만 갖고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이 사건은 캄보디아 영해에서 한 다이버가 선박 앵커체인에 코카인 200㎏을 숨겨 출항했다는 미국 수사국의 제보를 통해 드러났다.
당초 이 선박은 석탄 1만5000 톤을 싱가포르를 거쳐 충남 태안군 태안화력발전소에 하역할 목적으로 출항했다.
수사국의 제보에 따르면 밀수 일당은 당초 예상과 달리 선박이 멕시코를 지날 때 마약을 회수하지 못했고, 마약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