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진희 기자 = 한 공무원이 베트남 일식당에 설치된 전범기 '욱일승천기' 간판을 내린 사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3일 서울 용산구에 따르면 윤성배 용산국제교류사무소장은 1일 베트남 퀴논시의 한 일식전문점을 찾았다.
윤 소장은 출입구 상단에 욱일기를 닮은 간판이 설치돼 있는 것을 보고 즉시 식당 매니저를 찾아 "간판 디자인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전범기와 닮아 있으니 디자인을 바꾸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매니저는 "지적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외부 인테리어 업자가 공사를 했고 (본인은) 디자인을 바꿀 권한이 없다"고 답했다.
이에 윤 소장은 인테리어 업자와 직접 통화를 했다. 해당 업자 역시 "우리는 인터넷으로 일본풍 디자인을 찾다가 눈에 띄는 걸 보고 작업을 했을 뿐"이라며 "베트남에는 이를 금하는 법이 없다"고 교체를 거부했다.
윤 소장은 현지인 도움을 얻기로 했다. 페이스북을 활용해 간판 사진을 올려 문제를 공론화한 것이다. 윤 소장이 운영 중인 국제교류사무소 '꾸이년 세종학당' 학생들이 식당에 항의 전화를 했다.
주인을 직접 설득하기 위해 이튿날 다시 식당을 찾은 윤 소장에게 주인은 오히려 "베트남 예법 상 남의 사업에 간섭하는 게 더 문제"라며 배상을 요구했다.
윤 소장은 게시글을 지우고 비용도 직접 낼테니 간판을 바꿔달라고 재차 주인을 설득했다. 주인은 결국 마음을 돌렸다. 3일 뒤 설치된 새 간판에는 문제의 '욱광'(旭光)이 사라졌고 45도 각도 사선이 배치됐다.
윤 소장은 "주인이 현명한 결정을 내려줘 고맙다"며 "퀴논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이 될 거라 믿는다"며 바뀐 간판 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퀴논시는 최근 각광받는 국제 관광도시다. 용산구와의 인연으로 인해 베트남을 대표하는 '친한파' 도시가 됐다. 퀴논시청에는 1년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올초 직항이 놓인 퀴논시 푸캇 공항에는 '어서오십시오. 대한민국 서울 용산구 자매도시 퀴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한글 플래카드도 걸려 있다.
1965년 베트남전쟁 당시 용산에서 창설된 맹호부대가 퀴논시에 주둔했다. 하지만 1992년 한·베 국교수립 이후 참전했던 군인들이 도시간 우호교류를 제안했고 1996년 용산구의원이던 성장현 구청장이 대표단으로 퀴논을 찾았다. 이후 다양한 교류가 있었고 이를 통해 성 구청장은 2018년 베트남 주석 우호훈장을 받기도 했다.
윤 소장이 이끄는 용산국제교류사무소는 2016년 개관 이래 한국어 강좌(꾸이년 세종학당), 사랑의 집 짓기, 유치원 건립, 백내장 치료지원 등 현지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빈딘성 투자설명회' 후원했다.
성 구청장은 "이번 전범기 간판 교체는 도시외교사의 쾌거로 기록될 것"이라며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구와 공직자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