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앞둔 빈집 지하실 들어간 노인의 반전 행동

입력 2020.08.30 07:01수정 2020.11.11 13:33
범죄 맞지
재개발 앞둔 빈집 지하실 들어간 노인의 반전 행동
© News1 DB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빈 건물이다. '출입금지'라는 표시가 있다. 주민 대부분이 떠난 빈 주택가에 A씨(63)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월 어느 날 정오, 서울 동대문구 한 주택재개발단지였다.

A씨는 망치와 멍키 스패너, 플라이어 등 공구를 들고 있었다. 그는 잠기지 않은 문을 열어 반지하 보일러실로 들어갔다. 그가 가져 나온 것은 시가 80만원으로 추정되는 보일러.

지난 2월 어느 날 오후 1시쯤, A씨는 동대문구 소재 '공가'에 이르렀다. 이번에도 망치·멍키스 패너·플라이어 등을 들고 있었다. A씨는 반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가 20만원 상당의 보일러 1대와 수도꼭지를 들고나왔다.

동대문구 소재 재개발단지 주택 대부분 거주민이 이주한 채 비어 있었다. A씨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서 올해 1월 그곳 안에서 고철류 제품을 갖고 나와 팔기로 했다.

A씨의 '빈집털이'는 재개발정비사업조합 관계자에게 적발돼 수사기관의 판단을 받게 됐다. 그는 특수건조물침입, 특수주거침입, 절도, 절도미수 혐의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사람이 살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를 들고 나오면 범죄일까. 재판 쟁점은 그가 지난 1월30일부터 2일19일까지 들어간 건물이 거주하는 이가 없더라도, 사람이 '관리'하는 건조물로 해석할 수 있느냐였다.

A씨 측은 재판에서 "이사를 종료한 '빈집'들이기 때문에 사람이 관리하는 건조물이라 보기 어렵다"며 "보일러와 수도꼭지 등을 철거해 가져온 행위는 타인이 점유하는 재물을 절취한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특수건조물침입죄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다르게 해석했다. A씨가 안으로 들어간 각 주택의 출입문에는 '무단 침입, 점유 또는 사용은 불법 행위'라는 경고문이 부착돼 있었다는 것이다.

해당 주택은 재개발정비사업조합과 그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관계자가 관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보일러 처분권도 그 관계자에게 있다는 재판부의 해석이다.

재판부는 "출입 금지 표시 스티커가 붙어 있고, 재개발조합 이름이 문에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공가이지만 해당 조합 관계자가 관리한다'고 생각했다"는 A씨의 경찰 조사 진술도 거론했다.

재판부는 "(멍키 스패너 등이) 흉기는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의 신체에 해를 가할 수 있는 물건에 해당하고, 망치를 이용해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간 행위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특수 건조물침입죄를 인정했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 14일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인근에 거주하며 재개발로 관리가 소홀한 것을 알고 범행을 저지르고 동종 범죄로 벌금형의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며 "일부 범행 장소는 사람이 거주하는 주거지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훔친 보일러 등의 실제 피해액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이를 대부분 처분하지 못해 범행으로 얻은 이익도 이익이 경미한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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