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못벌면서 술값 19만원 왜썼냐".. 탈북 연인의 '비극'

입력 2020.08.19 07:00수정 2020.08.19 10:14
동거 생활 채 한 달도 안 된 때였다.
"돈도 못벌면서 술값 19만원 왜썼냐".. 탈북 연인의 '비극'
뉴스1 그래픽. © News1

(수원=뉴스1) 최대호 기자,유재규 기자 = 탈북 연인이 남한에서 경제적인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 살인사건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비극을 맞았다.

지난해 여름 동반 탈북에 성공한 전모씨(40)와 A씨(36·여) 이야기다.

전씨와 A씨는 2018년 11월 북한 양강도 보천군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북한에서의 생활이 힘겨웠던 이들은 남한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동거 반년만에 탈북 계획을 실행에 옮겼고, 2019년 6월 성공리에 남한 땅을 밟았다.

전씨는 강원도 화천군에서, A씨는 경기 안성시에서 각각 6~7개월에 걸쳐 북한 이탈 주민 정착 지원 교육을 마치고 꿈에 그리던 남한 사회 구성원이 됐다.

수개월간 떨어져 지내던 둘은 올 1월부터 화성시에서 다시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낯설기만한 자본주의사회 생활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사건은 지난 2월22일 발생했다. 동거 생활 채 한 달도 안 된 때였다.

그날 전씨는 탈북민 지인들과 술을 마셨고, 노래방도 갔다. 19만원 상당 술값은 전씨가 계산했다.

A씨는 그런 전씨가 못마땅했다. '돈도 못벌면서 왜 술값을 계산했냐'며 잔소리했고, 이는 곧 다툼으로 번졌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에 화가 난 전씨는 A씨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과일을 깎던 A씨는 이에 대항하다 들고 있던 과도를 한 차례 휘둘렀다.

과도에 상처를 입은 전씨는 격분했다. 집안에 있던 다른 흉기를 가져와 A씨에게 달려들었다. 목과 등 부위를 찔린 A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전씨는 A씨를 방치한 채 잠을 잤고, 그녀는 결국 과다출혈로 숨졌다.

잠에서 깬 전씨는 범행을 숨기기 위해 숨진 A씨를 여행용 캐리어에 넣고 현장을 청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결국 체포됐다.

재판에 넘겨진 전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어려운 탈북 과정을 거쳐 새 생활을 시작하려던 피해자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자유롭게 꿈꾸던 삶을 살아보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먼저 흉기를 휘둘러 상처를 낸 경위를 고려한다 해도, 이미 한차례 찔려 넘어져 반항하지 못하는 피해자의 목과 등을 찔러 잔혹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트렁크에 넣어 은폐한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덧붙였다.

전씨는 '처벌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에서 그는 사건 당시 술에 만취한 상태였다는 점을 부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전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리를 진행한 수원고법 형사3부(엄상필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전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의 조사 과정, 증거 등에 비추어 볼때 피고인이 당시 술을 마신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이르렀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 동기와 수단 및 결과, 범행 후 정황 등 이 사건에 나타난 제반 양형조건을 종합해 볼 때 원심의 형이 지나치게 무거워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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