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전형민 기자 =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등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지난달 31일부터 본격 시작됐다. 앞으로 세입자는 최대 4년 동안 계약을 연장할 수 있고, 집주인은 직전 계약 보증금의 5% 이상 임대료를 올릴 수 없게 됐다.
약자인 임차인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나, 현장에서는 벌써 각종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일 <뉴스1>은 '임대차3법 대책위원회'와 '임대인협의회 추진위원회' 등 임대사업자 관련 단체의 도움을 받아 현장에서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사례를 모았다.
◇졸지에 전세 난민…"저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요?"
A씨는 자녀들 교육을 위해 기존 집을 처분하고 서울에 전세를 살기로 했다. 최근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고 2개월 후 입주하기로 해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전세보증금 잔금 등 마련을 위해 기존 집의 처분 절차도 밟았다.
하지만 며칠 전 공인중개사로부터 황당한 소식을 들었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집의 기존 세입자가 임대차3법을 이유로 마음을 바꿔 계속 살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미 기존 집 처분 계약까지 진행 중이던 C씨는 급하게 다른 부동산을 돌며 집 구하기에 나섰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커녕 임대차3법으로 전세 매물 자체가 사라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C씨는 "임대차3법은 세입자에게 좋은 법이라고 들었는데,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이대로 전세 난민이 되더라도 아이들 교육은 시켜야 할 것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다.
◇"집 살 때 돈을 100% 다 가지고 사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됩니까?"
무주택자인 B씨는 평생 모은 돈으로 겨우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집값 폭등으로 적금을 깨고 대출을 받아도 잔금이 1억원 정도 모자랐다.
결국 잔금 지급 날짜를 입주해 있는 전세 계약의 만기일로 맞춰 보증금을 주변 시세와 맞게 1억원 증액해 그 돈으로 잔금을 치르기로 했다. 임차인도 주변보다 전세 보증금이 유독 쌌기 때문에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임대차3법이 시행 조짐을 보이자 임차인은 말을 바꿔 만기가 되어도 계속 살겠다고 했고, 보증금도 5% 이상 올려줄 수 없다고 했다. A씨는 잔금을 치를 수 없어 전 재산과 계약금, 중도금을 모두 날리게 됐다.
B씨는 "당장 입주하지 못하는 집을 사면 투기꾼이라는 기준은 누가 세운 것이냐"며 "집을 살 때 돈을 100% 다 가지고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하소연했다.
◇"LH도 안 사겠다는 집을 전세 때문에 유지했는데…우리가 투기꾼인가요?"
C씨의 부모님은 60세 은퇴 후 퇴직 자금과 기존에 살던 서울 주택을 처분하고 노후 대비용으로 남은 돈과 대출을 일으켜 교외에 7가구가 전·월세로 세 들어 사는 다가구주택을 매입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규제를 잇달아 내놓자 집을 팔기로 했다. 문제는 내놓은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직장 때문에 직주근접을 위해 거주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세입자들에게 매매 의사를 문의했지만, 모두 거주는 하고 싶지만 매입 의사는 없었다.
C씨 부모님은 하는 수 없이 손해를 보더라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공공매입을 문의했다. 하지만 LH조차 '교통이 불편하고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매입의사가 없다'고 답해왔다. 결국 C씨의 부모님은 7주택자가 됐고, 임대 수익보다 더 많은 보유세를 내야 할 처지에 몰렸다.
C씨는 "LH조차 매입 안 하겠다는 곳에서 다가구주택 임대사업을 하는 칠순이 넘은 제 부모님이 정말 부동산 시장을 망친 투기꾼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약자인 세입자를 보호하는 임대차3법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 시행 방법을 세분화하고 사각지대에 대한 보완 정책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단기적으로는 전세보증금 상승률 최대 5%라는 제한이 있으니 전셋값이 안정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최대 4년(2+2)이 지나고 난 뒤 전셋값 폭등은 불 보듯 뻔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다른 국가보다 열악한 공공임대 시장을 일부 보완해오던 민간임대시장이 하루아침에 움츠러들게 되면서 전세 매물 공급이 줄고, 전세난이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뉴욕이나 베를린처럼 일부 도시에서 부분적으로 비슷한 내용의 제도를 시행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처럼 전체 주택을 대상으로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경우는 전 세계에서 최초일 것"이라며 "부작용이 클 텐데 이에 대한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