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이장호 기자 = 미국 가정에 입양된 한 여성이 37년 만에 찾아간 자신을 문전박대한 아버지를 상대로 제기한 친자 확인소송에서 12일 승소했다.
이번 판결은 해외 입양인이 한국에서 제기한 첫 번째 친자확인소송으로,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됐지만 자신의 뿌리를 찾길 갈망하던 이들에게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단독 염우영 부장판사는 이날 어린시절 미국에 입양됐던 카라 보스(한국이름 강미숙)가 친부 오모씨를 상대로 제기한 인지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염 부장판사는 "판단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분들이 없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한 뒤 선고를 진행했다. 이어 "원고 카라 보스는 피고 오씨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로 보스는 오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법적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선고가 끝나자 보스는 감격에 겨웠는지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아버지 오씨는 이날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다.
보스는 1983년 충북 괴산의 한 시장 주차장에 버려져 이듬해 미국 미시간주 세리든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성인이 된 후 네덜란드 남편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둔 그는 5년 전 딸을 낳은 후에야 한국인 어머니가 자신을 버림으로써 겪었을 엄청난 고통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어머니와 다시 연락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게 됐다.
하지만 한국의 사생활보호법은 입양인의 경우 주소와 전화번호 등 친부모의 정보를 부모들이 동의할 때에만 얻을 수 있도록 한다. 보스는 그래서 2017년 한국을 여행하며 1983년 자신이 버려진 시장을 방문하고 자신을 기억하는 이를 찾기 위해 전단을 뿌렸다.
그녀의 사연은 한국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런데 돌파구는 뜻밖의 곳에서 나왔다.
2016년 보스는 자신의 유전자 자료를 온라인 족보 플랫폼 '마이헤리티지'에 올렸다. 지난해 1월 이 플랫폼을 통해 헤어진 지 오래된 두 자매가 만나게 된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의 계정을 다시 확인했고, 자신과 유전자 정보가 일치하는 한 유학생을 찾게 됐다.
이를 계기로 보스는 아버지를 찾았다. 그러나 한국 법원은 보스의 아버지의 성이 오씨라는 것을 빼고는 주소 등의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보스는 지난해 11월18일 보스는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그러고서야 합법적으로 오씨의 주소를 알 수 있게 됐다. 지난 3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의 벨을 눌렀지만 아버지는 보스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후 법원 명령으로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두 사람이 부녀일 확률은 99.9%였다. 재판이 진행됐지만 오씨는 변호사를 선임하지도 법원 심리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오씨는 법원 판결이 난 뒤에 보스를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보스는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법적으로 내가 아버지의 딸임을 인정받게 된 날이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닦은 그는 서툰 한국어로 "엄마, 만나고 싶어요. 정말 미안해 하지 마세요. 그냥 오세요"라며 "엄마 제 얼굴 아세요? 오셔주세요"라고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