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스카프 4만5천원에 당근마켓 올렸더니.. 울컥

입력 2020.06.13 10:29수정 2020.06.13 15:18
이런식으로 돈을 버네요..
[파이낸셜뉴스] 당근마켓에 다른 사람이 올린 상품을 다른 지역에 그대로 올려 판매하고 차익을 챙긴다면 사기일까?

당근마켓이 지역기반 서비스란 점을 이용해 서로 다른 지역을 오가며 차익을 챙기는 신종 수법이 발생해 눈길을 끈다. 지방에서 싼 값에 올라온 물건 사진과 설명을 도용해 원 판매자가 볼 수 없는 타 지역에서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식이다. 이들은 거래가 성사될 낌새가 보이면 원 판매자에게 접촉해 물건을 구입해 되파는 수법으로 차액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당근마켓이 쿠팡에 이어 거래량 국내 2위의 온라인 거래 플랫폼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신뢰도에 악영향을 주는 사례란 지적도 나온다.

명품 스카프 4만5천원에 당근마켓 올렸더니.. 울컥
당근마켓에서 판매글을 도용당한 판매자와 이를 알려준 이용자가 대화를 나눈 내용. 자신의 판매글이 도용된 사실을 안 판매자들은 대부분 불쾌감을 드러냈다. fnDB

■내 판매글을 누군가 가로챈다?

도용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A씨는 지난달 부산 해운대구에서 스카프 한 장을 4만5000원에 판매한다고 올렸다. 그는 ‘두바이 페라가모 매장에서 20만원대에 구입했다’며 ‘100프로 실크이고 명품 세탁 후 보관 중’이라고 설명도 달았다.

그런데 이 상품이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경기 성남시 분당구 게시판에 그대로 올라온다. ‘2017년 두바이 페라가모매장에서 구매’, ‘명품드라이까지 완료’, ‘페라가모 실크 100% 스카프’란 설명도 동일하다. 가격은 두 배가 넘는 9만9000원이다.

A씨에게 이 구매자 사진을 보여주고 묻자 “이전에 어떤 분이 상세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드린 사진”이라며 “이런 사기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황당해했다.

역시 부산 해운대구에서 스카프 판매글을 올린 B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9만원에 판매글을 올린 B씨는 ‘런던 리버티 백화점에서 구매한 겐조 실크 스카프’라며 ‘프런트가 너무 세련되어서 어떤 옷이나 잘 어울린다’고 판매글을 작성했다.

이 글 역시 몇시간 지나지 않아 서울 서초구 게시판에 올라왔다. A씨 사례와 같은 판매자로 그는 ‘겐조 실크 100% 스카프’라며 ‘런던 리버티백화점 겐조매장 구매 후 소장한 제품’이라고 표현했다. 판매가격은 15만9000원이 붙었다.

명품 스카프 4만5천원에 당근마켓 올렸더니.. 울컥
당근마켓에서 확인된 판매글 도용 행각은 금전적 피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려워 처벌이 쉽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fnDB

■사기죄 성립은 어려워

흥미로운 건 게시글 도용으로 원 판매자와 최종 소비자 모두 어떤 금전적 피해도 입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래가 성사될 경우 원 판매자는 자신이 원한 가격에 물건을 팔 수 있고, 최종 소비자 역시 자신이 선택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원 판매자의 게시글을 도용한 사람만 중간에 차익을 얻으니 어떤 피해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수 당근마켓 이용자들은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물건을 원하는 가격에 팔고 사더라도 누군가 중간에 차익을 챙길 것이란 고려는 하지 않고 플랫폼을 이용하니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사례가 많아지면 유통되는 물건의 평균 가격이 오르게 돼 장기적으론 모두가 피해를 본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 같은 사례를 적발해도 처벌은 용이하지 않다. 한 경찰 관계자는 “사기로 수사를 하려면 피해가 발생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는 특정된 피해자가 없다보니 애매하다”며 “업체가 시스템 개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조원익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에게 문의하자 “사기로 보긴 어렵고 중개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매수인은 얼마든지 검색을 통해 시세를 확인하고 적정한 가격을 확인할 수 있고, 매도인에게도 이를 영업으로 하면서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책임이 부여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기죄로 처벌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파이낸셜뉴스는 일상생활에서 겪은 불합리한 관행이나 잘못된 문화·제도 등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김성호 기자 e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제보된 내용에 대해서는 실태와 문제점, 해법 등 충실한 취재를 거쳐 보도하겠습니다. 많은 제보와 격려를 바랍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