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한종수 기자 = "결재과정에서 1시간은 기본…. 지난주 목요일은 오전 8시부터 점심시간까지 3시간을 내리 깹니다. 그 과정에서 X끼야, 야이 X 등 모욕적인 말을 합니다. 주말에 집에 못가게 일을 강요하고 새벽까지 일을 시킵니다. 하루하루 지옥입니다. 우울증 약도, 정신과 처방도 무용지물입니다. 가슴 떨리고, 두렵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울었다 웃었다 사람이 이상하게 변해갑니다. 20년 근무했지만 이런 경우 처음입니다. 정말 두렵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일부 개정한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0개월가량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이 '사내 갑질' 문제로 힘들어 하고 있다. 직장 갑질 문제는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윗글은 지난 26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게시된 글이다. 공기업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한국전력공사, 그것도 20년차 차장급이 겪는 일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한전 사내문화의 민낯'이란 제목으로 올라 온 게시글에 따르면 해당 직원은 "이런 갑질 과정에서 폭행이 3번에 걸쳐 일어났다"며 "처음 한두 달 전에는 폭언과 함께 등짝을 손으로 퍽 하는 소리가 나도록 세게 가격했고, 두 번째는 보고서를 말아서 제 이마를 찍고 밀치고 나서 던졌고, 세 번째는 모두가 보고 있는 중앙 탁자에서 첫 번째 폭행과 같이 등짝을 2번 가격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내일 정식으로 신고하고 싸우려 한다"며 "노조 없는(직급상 가입을 못한다는 의미) 차장이 본사에서 혼자 싸울 것을 생각하니 겁이 나고 오히려 내가 처벌받지 않을까 두렵고 승진 하려면 참으라는 주위 만류도 있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기에 맞서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해당 게시 글이 올라온 후 블라인드 회원들은 "클라쓰 쩌네(갑질 수준이 어이없는 정도로 심하다는 뜻)", "깡패XX인가", "2020년도에 저런 곳이 있다니", "저걸(갑질을) 참는 것도 대단", 원래 한전 (갑질로)유명하다"라는 댓글을 달며 함께 분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전 고위 관계자는 28일 뉴스1과 통화에서 해당 갑질 문제와 관련해 "어제 감사실에 신고가 접수됐고, 절차에 따라 조사하고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는 갑질 문제 등으로 피해를 본 노동자는 사업주에 신고하도록 돼 있고, 사업주는 조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했다.
사내 갑질 및 괴롭힘 관련 피해 신고가 접수됨에 따라 한전 측은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본격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며, 높은 연봉과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자랑하는 한전이 어떤 방식으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대처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의 박점규 운영위원은 "개정법 시행 이후로 폭언 같은 건 많이 없어졌지만, 한전이나 포스코 같은 공기업들은 아직도 군대식 문화가 남아 있어서 이런 잔재들이 상존하는 것 같다"며 "이는 공론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