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뉴스1) 김평석 기자 = 정상 세포에서는 사멸하고 암세포에서만 증식하는 암 치료 유전자가 삽입된 ‘유전자 변형 아데노바이러스’가 항암 작용을 해 췌장암 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효과를 거뒀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다.
아직 1상 임상이기는 하지만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황진혁 교수(1저자: 이종찬 교수) 연구팀은 절제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같은 내용의 치료법 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27일 연구팀에 따르면 췌장암은 5년 생존율이 약 12.2%에 불과할 정도로 예후가 나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치명적인 암이다.
주변 림프절과 혈관까지 암세포가 침범한 국소진행형 췌장암 환자의 경우 수술이 어렵고, 항암 치료에 대한 내성이 생겨 도중에 치료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하지만 최근 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정밀의학에 바탕을 둔 항암 치료가 각광받고 있고, 췌장암의 경우에도 여러 형태의 새로운 치료법이 연구되고 있다.
새로운 치료법들이 정맥이나 동맥 침범 등 여러 원인으로 수술이 어려운 췌장암 환자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황진혁 교수 연구팀은 2016년 8월부터 약 2년 동안 절제 수술이 불가능한 국소진행형 췌장암 환자 9명을 대상으로 아데노바이러스를 유전자 전달체로 이용한 새로운 치료법의 안전성 및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아데노바이러스는 감기와 같은 가벼운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로, 유전자의 운반체로 흔히 이용된다.
연구팀은 먼저 사이토신 디아미나아제(cytosine deaminase, yCD)와 티로신 인산화효소(tyrosine kinase, HSV-1 TK)라는 두 가지 효소를 만들 수 있는 유전자가 탑재된 아데노바이러스를 내시경초음파(EUS, endoscopic ultrasonography)를 통해 췌장암에 투여했다.
주입된 아데노바이러스는 유전자 조작의 일차적 효과로 정상 세포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멸하고, 췌장암 세포에서만 증식하게 된다.
그 후에 환자가 항암 효과가 없는 경구약을 복용하면, 췌장암 세포 내 바이러스의 효소와 만나 항암제로 변화한다.
결과적으로 암세포에서만 살아있던 바이러스가 항암 작용을 해 췌장암 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효과를 거뒀다.
연구팀은 “총 9명의 췌장암 환자에게 적용한 결과 치료 12주째까지 의미 있는 부작용은 관찰되지 않아 비교적 안전한 치료법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치료 8주 후 독성평가에서도 2명의 환자가 약한 단계의 발열 반응을 나타냈을 뿐 중대한 이상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또 치료 12주째 CT 검사로 평가한 결과 9명 모두에서 췌장암이 진행되지 않았다.
암이 추가적으로 진행하지 않거나 사망에 이르지 않은 기간으로 항암제 효과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인 ‘무 진행 생존기간’의 중앙값은 11.4개월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의 책임 저자인 황진혁 교수는 “국내에서 단독으로 수행된 췌장암 1상 임상연구를 통해 새로운 유전자 치료의 안전성과 가능성을 확인하게 돼 의미 깊다”면서 “췌장암에 직접 유전자를 투여해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 치료가 췌장암의 진행을 늦출 수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향후 추가적인 임상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어 “췌장암은 아직까지 치료가 어려운 암에 속하지만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환자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내시경 분야 최고 권위를 갖는 저널인 ‘미국소화기내시경학회지(Gastrointestinal Endoscopy, IF:7.2)’ 최신 호에 게재됐다.
지난 3월에는 논문이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이 발행하는 저널 워치(Journal Watch)에도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