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진보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게 부끄러운 세상이 됐고 '진보'라는 이름이 너무 더럽혀졌다"며 장탄식했다. 그래도 진 전 교수는 "비리와 부패와 특권이 존재하는 한, 정의와 공정은 목소리를 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며 진보다운 진보 출현을 기대했다.
대표적 진보논객에서 최근 일부 진보진영으로부터 '변했다', '입진보'라는 공격을 받고 있는 진 전 교수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정의당이 위기에 빠진 원인이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지 못했던 까닭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이른바 진보라는 진영전체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정의당은 지지율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해 21대 총선 전망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에 몇 몇 젊은 정의당원들이 지난해 조국임명을 반대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자아비판에 나서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교수는 "설사 작년에 정의당이 조국 임명에 반대했더라도 지지율은 바닥을 찍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에 조국을 데스노트에 올리면 엄청난 후폭풍이 불거라는 것은 예상, 나한테까지 도와달라고 했다"며 "그때 맞아야 했던 폭풍을 지금 맞는 것뿐이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다만 "그때 폭풍을 맞았더라면,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이름에 흠집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며 지금쯤 얻어맞은 상처로부터 어느 정도 회복됐을 것"이라고 최근 위기는 정의당이 자초한 것이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정의당 위기는) 지지층을 확산, 스윙보트층의 표를 얻으려 진보 노선과 원칙에서 벗어나 오른 쪽으로 움직이는 전략의 한계가 드러난 때문이다"며 "노선을 버릴 게 아니라 노선이 왜 옳은지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이를 접어두고 정치공학적 계산에 행동을 맞추어 온 게 뼈저린 실수니 이제라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진 전 교수는 "과거에는 교차 투표층, 민주당과 정의당을 오가는 일종의 스윙보트 층이 있었지만 민주당에서 진영정치를 강화해 이 계층이 더 큰 질량을 가진 민주당의 중력에 끌려가 사라져 버렸다"며 "앞으로 진영정치는 더 심해질테니, 과거로 돌아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진 전 교수는 "총선이 끝나고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면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며 "과거 시민사회를 이루던 다수가 어느새 민주당과 이익의 유착관계를 맺고 지배블록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했지만 '정의'와 '공정'에 대한 요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그 곳에 정의당의 답이 있다고 했다.
즉 "(지금) 그것을 부르짖던 놈들이 사라졌을 뿐, 비리와 부패와 특권이 존재하는 한 정의와 공정은 목소리를 내줄 누군가를 기다린다"며 정의당이 그 노릇을 하면서 존재의 가치를 찾을 것을 주문했다.
따라서 진 전 교수는 "진보정당이라면 유권자들이 '나는 진보주의자이며 진보정당의 지지자'라고 떳떳하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며 "총선이 끝나면 남은 사람들을 모아서 무너진 진보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