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칼 들고 쫓아가는데 왜 도망가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길을 지나던 남녀 커플과 시비가 붙자 화가 나 흉기를 들고 쫓아가 남자친구를 살해한 50대가 재판에서 자신을 보고 피해자가 도망가지 않은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발언을 해 원성을 샀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판판사 이대연)는 20일 오후 2시30분쯤 살인 및 상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53)에 대한 첫 공판 기일을 진행했다.
A씨는 지난 1월26일 오전 1시46분쯤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서 길을 가던 연인과 시비를 벌이던 중 화가나자 집에서 흉기를 가져 나와 연인을 따라가 남성 B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더불어 A씨는 B씨와 함께 있던 여성 C씨가 자신의 범행을 제지하려 하자 폭행해 눈 주변이 함몰되는 골절상을 입힌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이날 첫 재판에서 A씨는 자신에게 부과된 공소사실은 전부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화가나 흉기를 집을 때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범행 당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며 자신이 심신미약 혹은 심신상실 상태였음을 주장했다.
A씨는 "어떤 상황에 사람의 의식이 도달하면 눈이 뒤집히는 게 맞더라. 기억이 전혀 안 난다"라며 경찰차가 현장에 도착해서부터 정신이 돌아와 그때부터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A씨의 변호인은 그가 평소에도 양극성 정동장애, 분노조절장애에 시달려 왔다며 "(범행 당시) 제어할 수 없는 분노 상태였고 이성을 잃어 아무 생각이 안 났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A씨는 범행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찰에서 초동조사를 받을 때 경찰이 자신에게 겁을 주려고 살인 혐의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또 A씨는 이런 말을 하며 경찰의 초동조사가 형편없었다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또 A씨는 경찰 조사에서는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폐쇄회로(CC)TV 장면을 보지 못하고 검찰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영상을 봤을 때 자신은 찌르려는 의도가 없었던 것 같은 데 피해자와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칼에 찔린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A씨는 "개인적으로 칼을 들고 쫓아가는데 도망가지 않고 신고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고 방청하던 유족들 사이에서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재판장이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을 하지 말라"며 A씨의 발언을 제재했다.
A씨가 범행의 고의성을 부인하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하자 법정에 나온 C씨는 '제가 다 봤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재판을 지켜본 피해자 B씨의 아버지는 "이번 사건으로 먼저간 아들도 그렇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의 삶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라며 "가족들 전체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아이의 엄마의 경우 식사도 못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C씨도 "(피고인이) 칼로 찔렀는지 안찔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 서있는 상태에서 (칼이) 두차례 왔다 갔다 했고 제가 그 칼을 빼내려던 순간 폭행당한 것"이라며 "거짓으로 감형받으려고 하지 말고 제발 죗값을 받으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