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손인해 기자,박승희 기자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의 원인으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 지목됐으나 검찰은 강제수사 돌입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정치권에 떠밀려 칼을 휘두른다'는 부담과 아울러 수사 결과에 따른 비판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당장 대대적 수사에 들어가지 않을 거란 해석이 나온다.
일단 검찰이 신천지 압수수색이나 관련자 구속 등 즉각적 강제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대외적 이유는 '방역당국에 협조' 때문이다.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검찰 강제수사로 신천지 신도들이 음성적으로 숨거나 이동이 활발해지면 오히려 방역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주 방역당국 관계자와 만나 이같은 설명을 전해 들은 대검찰청은 일선청에 업무연락을 통해 압수수색을 하기 전 대검과 먼저 협의해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다.
◇ 유병언 청해진해운과 달리 수사할 기업비리 없어
이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검찰이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교회를 전격 압수수색한 것과 비교된다.
신천지가 다른 점은 구원파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관련된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달리 수사할 기업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세월호 수사에서 배가 뒤집어진 원인인 '과적'을 들여다봐야 했다.
신천지의 경우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만희 신천지교 총회장과 12개 지파 지파장들을 살인죄와 상해죄, 감염병 예방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 1일 고발했으나 이들 모두 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살인죄와 상해죄 모두 고의범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범죄 성립이 안 되고, 방역 당국이 신천지가 제공한 자료에 문제가 없다고 밝힌 만큼 감염병 예방법 위반 역시 인정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방역 당국은 신천지 측이 고의로 신도 명단을 누락하거나 제공을 거부했다는 일부 지자체 주장과 달리 지자체가 확보한 신천지 명단과 신천지에서 제공한 자료가 대체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입장이다.
유병언 수사 실패 경험도 검찰이 신천지 강제수사를 망설이는 이유다. 당시 검찰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유 전 회장에게 있다고 보고 유 전 회장 일가 비리에 대한 대대적 수사에 나섰으나, 정작 유 전 회장이 전남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변사체로 뒤늦게 발견되면서 부실수사 비판이 일파만파 커졌다.
세월호 수사팀 소속이었던 한 검사는 "유 전 회장이 백골로 발견되자 김진태 검찰총장의 자리가 흔들리고 강찬우 대검 반부패부장과 최재경 인천지검장이 구원투수로 가야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최 전 지검장은 같은해 7월 검거 실패 책임을 지고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 "중앙지검 2주 마비 땐 비상사태" 내부감염 우려
이 총회장의 횡령 등 개인 비리 혐의를 수사한 경찰이 이미 지난해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는 점도 검찰로선 부담이다. 이 총회장과 내연녀 김남희씨가 경기 가평과 경북 청도 등에 1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신천지 자금으로 샀다는 의혹을 수사한 경찰은 이 총회장의 계좌추적과 회계장부 검토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세월호 수사와 신천지 수사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한다"며 "유 전 회장은 세월호 과적을 했고 고의범적 성격이 컸으나 신천지는 드러나는 비리나 범죄가 없다"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 입장에서 신천지 수사는 별로 들어가고 싶은 수사가 아니다"며 "구원파 수사 때보다도 조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확실한 혐의없이 들어갔다가 정치권에 떠밀려 들어갔단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사건"이라고 했다.
검찰 내부 감염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코로나에 걸린 신천지 주요 관계자와 이들이 다녀간 장소를 대상으로 강제수사에 들어가 검사와 수사관이 감염되면 검찰청이 문을 닫아야 한다. 코로나 사태에 압수수색을 최소화하라고 지시한 대검은 불가피하게 압수수색에 나갈 경우 방호복과 방호안경 등을 착용하라는 지시를 일선청에 내린 상태다.
또 다른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이 2주간 마비된다는 건 어마어마한 사태"라며 "중앙지검에 걸린 수많은 사건이 올스톱될 가능성이 있는데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 정부 책임론에서 '검찰 책임론'으로 프레임 전환
신천지 강제수사가 총선을 앞두고 여권의 위기 대응 카드로 활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사실상 신천지를 겨냥한 강제수사 지시를 검찰에 내리고, 박원순 시장과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경기 남양주병 후보 등 일부 정치권과 지자체를 중심으로 검찰의 '신중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추 장관은 지난 2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신천지 강제수사 지시한 배경에 대해 "대검에서 만약의 대비를 하고 있으라는 업무지시"라며 "지금 문제는 지역 확산을 막는 것이고 14일 잠복기 내에 총력전을 전격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지자체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온 국민 관심이 정부 방역 대응에 쏠린 상황에서 검찰이 신천지 본격 수사에 들어가면 선거를 앞두고 수사를 잘하냐 못하냐, 신천지를 봐주냐 안 봐주냐에 포커스가 갈 것"이라며 "정부 책임론에서 검찰 책임론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 현직 검사는 "사건이 터지면 검찰이 나서서 후다닥 누구 구속하거나 하는 척 하는 건 구태 중의 구태"라며 "신천지를 압수수색하고 구속하면 갑자기 코로나 균들이 검찰 수사권의 존엄함을 알고 진정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