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직장인 이혜지(가명·여·29)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릴까 끔찍하다"고 털어놨다. 단순히 건강 걱정 때문이 아니다. 감염 시 이동 경로가 공개돼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씨는 근무시간 이후 사교 모임을 비롯한 개인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씨는 "나의 개인 활동은 말 그대로 사생활 영역"이라며 "코로나19 못지않게 사생활이 사실상 폭로되는 동선공개도 무섭다"고 한숨을 쉬었다.
3일 주요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지자체들은 추가 감염 예방을 막고자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고 있다. 공개 이유로는 '주민의 알권리'를 제시한다. 추가 감염 위험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고자 동선을 투명하게 알린다는 의미다.
추가 감염 예방은 물론 '코로나19 경각심' 확산에 어느 정도 효과적이라며 동선 공개를 지지하는 여론이 아직 우세하지만 '사생활 노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확진자의 방문 장소를 언급하며 이를 희화화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확진자 레전드'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려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 정보를 퍼뜨리는 경우도 발견된다.
강남에 사는 박진호씨(가명·35)는 "나의 유일한 낙이 사라졌다"고 호소했다. 그는 주말이나 휴일 때 연인과 함께 '호캉스'를 즐겼다. 호캉스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박씨의 애인은 코로나19 사태 종료 전까지 호캉스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유로는 '감염 우려'와 함께 '동선 공개 우려'를 내세웠다.
박씨는 "'코로나19에 감염돼 호텔 간 사실이 공개되면 도대체 어떻게 할려고 그러느냐'고 여자친구가 완강하게 거부했다"며 "동선공개로 밝혀진 정보를 놓고 조롱하는 분위기는 이제 멈춰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같은 이유로 유흥업소 방문을 자제하는 '기 막힌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선릉역과 역삼역 인근 등 유흥업소가 밀집된 곳에는 발길이 눈에 띄게 뜸해졌고 호객 행위도 줄어들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김석민씨(가명·38)는 "요즘 거래처 사람들도 '동선 공개 우려'를 이유로 유흥업소 방문을 꺼리고 있다"며 "코로나19 때문에 가정을 되찾았다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보다 확진자 수는 적지만 감염 우려가 지속 중인 일본에서는 동선 공개에 소극적이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최근 일부 환자의 동선을 공개했지만 대체로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거나 공개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다만 일본에서도 확진자 동선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해외 주요 언론들은 한국의 투명한 정보 공개 방침은 확진자 증가세를 완화하고 공포감을 줄이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면서도 "서구에서는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동선 공개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개인정보 보호법 규정 등을 보면 지자체나 공공기관은 소관 업무 수행을 위해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제3자인 언론 등에 이를 제공할 수도 있다. 다만 개인을 명확하게 특정하거나 유추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면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법무법인주원 임현철 변호사는 "확진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동선을 공개한다면 법 위반 문제는 전혀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동선 공개로 불가피하게 확진자의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경우가 발생하면 상황에 따라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