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
무섭다, 소름이 돋을 정도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데스노트'가 또 적중했다. 이 정도면 작두를 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살생부에 이름을 올린 정치인은 영락없이 사라져 '정치권의 저승사자'로 '진풍낙엽'(陳風落葉)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던 진 전 교수가 "함량미달로 퇴출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던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28일 오후 21대 공천경쟁에서 탈락, 조용히 짐을 꾸렸다.
◇ '이 씨 XX' SNS글로 진중권 데스노트에 이름 올린 민경욱, 아침저녁으로 '하트'날리며 애를 써봤지만
민경욱 의원은 청와대 대변인, 황교안 대표체제 첫 대변인 등 '보수의 입'으로 나름 입지가 탄탄했다. 그런 그가 지난 13일 아차 실수로 진중권 전 교수 눈밖에 나 데스노트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문재인 정권 공격에 지나칠 정도로 열심이었던 민 의원은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씨×× 잡것들아!”라고 시작하는 약 3000자 분량의 글을 올렸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출처불명의 글로 "문재인X 재산이 까뒤집혀지는 날 그X이 얼마나 사악하고 더러운지 뒤늦게 알게 되고", "후광인지 무언지 김대중 같은 X", "대도무문이란 김영삼 같은 X 개무시로 쪽무시로 나갔어야 했는데!"라며 전현직 대통령을 가리지 않고 험한 말을 퍼부었다.
다음날 진 전 교수는 14일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따져야 할 것은 후보자격이 아니라 인간자격이다"며 "한국당이 공천을 줄지, 탈락시킬지 지켜보겠다"고 데스노트에 '민경욱'하고 적었음을 알렸다.
그러면서 "민주당에서는 정봉주 정리했습니다. 한국당에서 민경욱씨에게 공천 주면, 아마 4월에 선거 치르는 데에 지장이 많을 것"이라면서 "이분, 자유한국당의 김용민이 될 것이다"고 한번 더 못을 박았다.
진 전 교수 호출 뒤 민 의원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 저녁으로 지역구 구석 구석을 찾아 다니며 하트를 마구 날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대정부 비판 선두에 섰고 이따금 황교안 대표를 향한 충성도 표시했다.
하지만 별 소용 없었다. 민경욱의 하트보다 진중권의 데스노트가 훨씬 더 셌다.
◇ 진풍낙엽에 김성태· 정봉주· 김의겸, 그리고 조국…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 애썼던 정봉주 전 의원과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도 진풍에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원내대표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김성태 의원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진중권 데스노트 속 손님이었다.
친문 지지층 여론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정봉주 전 의원은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잡겠다며 서울 강서갑 공천을 희망했다.
그러자 진 전 교수는 지난 8일 "저는 정봉주씨 같은 인물은 절대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쳐라'를 외쳤다. 진 전 교수수는 "민주당 지도부가 미적거리는 것은 나꼼수 팬덤 때문이지만 불행히도 정봉주는 조국이 아니니 그 팬덤이 조국을 지켜주듯이 정봉주를 지켜주지는 않을 것이다"고 걱정말고 자르라고 조언까지 했다. 결국 정 전 의원은 지난 11일 눈물을 흘리며 공천경쟁을 철회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도 지역구 출마 의지가 강했으나 지난 1일 "죽을 때 잘 죽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니 너절하게 굴지 마시고 이쯤에서 깔끔하게 내려놓으세요"라는 진 전 교수 통보를 받고 말았다. 이틀 뒤인 3일 김 전 대변인은 "출마하지 않겠습니다"고 뜻을 꺾었다.
진 전 교수는 '딸의 부정 취업 청탁' 등으로 기소됐던 김성태 의원이 지난달 17일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정계은퇴하고 황교안 대표는 이 분(김성태)을 이번 공천에서 배제하라"고 압박했다. 김성태 의원도 지난 15일 눈물속에 "문재인 정권의 파시즘을 불러들인 원조가 있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진 전 교수와 한때 친구 사이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낙마에도 그가 한 몫 단단히 했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진중권 "한 일이라곤 머리 민 것밖에 없는 민머리 철새를 전략공천?"며 이언주도 데스노트에
현재 가장 가슴조리고 있을 정치인은 이언주 통합당 의원으로 보인다. 진 전 교수가 지난 19일 "이언주 의원이 한 것이라곤 머리를 민 것밖에 없다"며 "세상에, 머리 밀었다고 공천 줍니까? 유권자를 우롱하지 말라"고 통합당 데스노트에 이 의원이 올랐음을 통보했다.
부산에 둥지를 틀 예정이었던 이언주 의원은 '보수의 잔다르크'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지금까지 조용히, 당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