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뉴스1) 남승렬 기자 = "꿈은 이미 이뤘습니다. 사실 제 꿈은 오로지 하나였어요. 빨리 결혼해서 식구를 늘리는 것. 식구가 늘고 아이들이 태어나야 집안에 웃음꽃이 다시 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33살 때 꿈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결혼도 했고 첫째에 이어 둘째가 태어났거든요"
26일 오후 대구 동성로 헌혈의집 동성로광장센터에서 만난 김영익씨(41)의 꿈은 소박했다.
김씨는 헌혈을 하던 중이었다. 몸에 힘이 없고 근력이 떨어지는 희귀근육병을 8년째 앓는 어머니에게 혹시 모를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헌혈증이 필요할까봐 시작한 헌혈이 어느새 58번째다.
그는 군 복무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1년도 안돼 큰 누나마저 갑작스럽게 잃었다. 그 충격으로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고, 어머니의 병세는 더 심해졌다.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았던 가족들이 갑자기 떠나고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자 집안에 웃음이 사라졌다.
김씨가 아둥바둥 취직하고 결혼을 서두른 것은 웃음이 사라진 집에 다시 웃음꽃을 피우기 위해서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다. 안해본 알바가 없었다"는 그는 "빨리 자리를 잡아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취업과 결혼 후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지난 9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앞으로 5년간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하고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단체인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ty) 회원에 이름을 올렸다.
대구 수성구청 7급 공무원인 김씨는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142호 회원이며 대구지역 공무원 중에서는 처음이다.
넉넉하지 않은 말단 공무원이 거액 기부를 결정한데 대해 그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취직하고 결혼하고 난 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유명인들이 기부하는 것을 보니까 멋있어 보였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는 지난 9월과 이달 초 500만원씩 1000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앞으로 3개월마다 500만원씩, 5년 안에 1억원을 모금회에 내기로 약속했다는 그는 "5년 할부 기부"라고 했다.
"퇴직 후에는 이미 따놓은 자격증을 활용해 사회복지사로 무직 봉사를 하고 싶다"는 그는 "기부도 중요하지만 모든 이들이 평소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베품이나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다"며 "넉넉하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기부와 나눔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연히 본 김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소개글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 '빅터 E.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 서문 중 일부였다.
'성공을 목표로 하지 마라. 성공을 목표로 겨냥할수록 빗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행복은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대의에 헌신할 때나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때 뜻밖의 부산물로 따라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