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해병대 아저씨 고맙습니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습니다."
지난 22일 오전 11시 광주 서구 풍암호수 목조다리 인근.
빨간 해병대 모자에 군복을 입은 남성 30명이 무리 지어 있는 가운데 잠수복을 입고 산소통을 멘 남성 4명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호수에 뛰어들었다.
흡사 긴급 작전이 진행되는 듯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수중 수색이 펼쳐졌다.
잠수사 4명은 호수에 고인 펄 때문에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일일이 손으로 호수 바닥을 더듬으며 무언가를 연신 찾았다.
스쿠버 장비를 장착한 잠수사 4명이 5분, 10분씩 산소를 확보하며 교대 투입되기를 1시간여.
그때 한 잠수사의 "찾았습니다!" 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긴장을 깼다.
남성이 번쩍 들어 올린 물건은 다름 아닌 펄이 묻은 휴대전화.
휴대전화를 발견한 해병대전우회 광주시 서구지회 회원들과 수색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일제히 "와~!"하고 손뼉을 치며 함성을 보냈다.
교각 인근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눈물을 글썽이던 금부초등학교 1학년 A양도 휴대전화를 보자 그때서야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사연은 이랬다.
지난 10일 풍암저수지에 산책을 나왔던 A양이 다리를 지나다 그만 휴대전화를 호수에 빠뜨리고 말았다.
A양의 할머니 소유였던 휴대전화에는 얼마 전 돌아가신 증조할머니 사진까지 담겨 있었고 자신의 실수로 호수에 빠뜨린 휴대전화를 찾지 못한 A양은 눈물보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휴대전화 케이스에 끼워진 현금 40여만원, 신용카드 등 할머니의 귀중품 전체를 본인이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A양은 몇 날 며칠을 우울해했다.
평소 밝고 명랑하던 A양이 풀이 죽어 우울한 표정으로 다니자 A양의 할머니가 자신의 지인에게 "호수의 물을 언제 빼느냐"고 물었고 사연을 알게 된 지인이 해병대전우회에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다.
오태근 해병대 광주광역시 서구지회 회장은 "손으로 다리 인근 바닥을 모두 더듬은 후에야 겨우 핸드폰을 찾을 수 있었다"며 "추운 겨울이라 일반 수트가 아니라 드라이수트를 입고 펄을 뒤져야 하는 악조건이었는데 수고해 준 전우들에게 고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평소 교통봉사, 광주천 정화 활동 봉사 등 해병대 회원들과 봉사를 많이 하다보니 소식을 접하고 휴대폰 수색을 부탁받았을 때도 망설이지 않았다"며 "A양에게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수중 수색을 마친 해병대전우회 회원들은 풍암호수에 묻힌 폐플라스틱과 생활 쓰레기 등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수중 정화 활동도 병행한 후 A양에게 핸드폰을 전달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일까.
12일동안 호수 바닥에 박혀있던 휴대전화 기계는 쓸 수 없었지만 메모리를 저장한 유심칩은 사용할 수 있게 돼 A양은 증조할머니의 사진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