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전 잃어버린 딸 만난 엄마가 내뱉은 첫마디

입력 2019.12.06 07:01수정 2019.12.06 10:24
한국 말 못하는 딸에게 "아임 쏘리, 아임 쏘 쏘리"
44년 전 잃어버린 딸 만난 엄마가 내뱉은 첫마디
지난 10월 한태순씨 부부가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실종돼 미국으로 입양을 갔다가 44년 만에 가족을 만나기 위해 귀국한 딸 신경하(미국명 라우리 벤더)씨를 기다리는 모습을 또 다른 실종아동의 엄마인 박혜숙 실종아동지킴연대 대표가 바라보고 있다.. 2019.10.18/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뉴스1


44년 전 잃어버린 딸 만난 엄마가 내뱉은 첫마디
1987년 8월 해운대 바닷가에서 실종된 홍봉수(현재 만 35세)씨의 어머니 오승민씨가 지난 5월16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5.16/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44년 전 잃어버린 딸 만난 엄마가 내뱉은 첫마디
한태순씨가 지난 10월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실종돼 미국으로 입양을 갔다가 44년 만에 가족을 만나기 위해 귀국한 딸 신경하(미국명 라우리 벤더)씨를 포옹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10.18/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최동현 기자 = 지난 10월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한태순씨(67·여) 부부는 44년 전 잃어버렸던 딸이 공항 입국장 문밖으로 나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섯살 때 헤어진 뒤 타국으로 입양보내져 한국어는 한마디도 할 수 없는 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태순씨 부부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게 기다림의 1시간 정도 이어졌을 때 딸 신경하씨(49)가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하야!" 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 나간 태순씨는 반세기 만에 딸을 안았다.

"아임 소리, 아임 소 소리(I'm sorry, I'm so sorry)." 딸을 품에 안고 태순씨가 처음으로 꺼내 뱉은 말은 '미안하다'였다. 뉴스1은 지난 8개월 동안 실종아동을 둔 가족들의 사례를 '어디있니?'라는 코너를 통해 연재했다.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만난 부모들은 잃어버린 자녀를 떠올리며 태순씨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꺼냈다.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반세기가 지나는 세월 동안 부모들은 잃어버린 아이에게 죄인이 된 심정으로 살고 있다. 부모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기다림의 형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태순씨가 인천공항에서 딸을 끌어안고 44년간 이어져 온 한(恨)의 형량을 마쳤을 때도, 또 다른 부모는 그 상봉의 감정을 부러워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태순씨가 딸을 찾는 과정을 지원했던 박혜숙 실종아동지킴연대 대표는 이날 상봉을 축하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찾았다. 모녀의 상봉을 먼발치에서 글썽이는 눈으로 바라본 박혜숙 대표도 2003년에 아들 모영광씨(당시 만 2세) 잃어버린 실종아동의 엄마다.

그동안 박 대표는 실종아동의 상봉 소식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소개하는 앞장서 왔다. 서로를 잃어버린 부모와 자식이 가족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길 바라서 였고, 어딘가에 있을 영광이가 이런 소식을 듣고 부모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박 대표는 이날 태순씨와 경하씨가 함께 공항을 떠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한 엄마의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에도 또 다른 엄마의 기다림은 이어졌다.

◇"자식 잃은 부모들 다들 암 하나씩은 달고 삽니다"

2019년 12월 현재 10년 이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장기실종아동의 수는 509명이다. 뉴스1에서 8개월 전 '어디있니' 기획을 처음 시작했을 때인 460명보다 40명가량 늘었다. 신규 등록자도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찾지 못한다면 '장기'실종자의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끊임 없이 돌아가는 시계 바늘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멍이 들고 곪고 병들게 했다. '시간이 지나면 더 찾기 힘들 것 같다'는 두려움에 부모들을 흘러만 가는 시간을 멈추고 싶은 심정이다.

지난 5월 뉴스1과 만나 아들 홍봉수군(당시 만4세)을 찾고 있는 사연을 소개했던 오승민씨(65·여)는 갑상선 암을 앓고 있다. 1987년 여름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 놀러 갔다 잃어버린 후 생활이 된 마음의 고통은 몸도 병들게 했다. 승민씨의 남편도 아들을 잃어버린 뒤 11년 만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죄책감에 배를 찌르는 고통에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자식 잃은 부모들은 거의 다 그래요. 거의 다 보면 암 한개씩은 가지고 있어요." 건강을 걱정하는 기자의 질문에 승민씨는 덤덤하게 말했다. "갑상선도 그렇고 7월에 검사를 했더니 뭐 희귀난치병이라고 해서 약을 먹고 있어요. 그렇게 살고 있어요"라는 승민씨에게 기자는 치료를 제대로 받아보는 것을 권했지만 "견딜 만해요 그래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승민씨가 얼마나 더 견뎌야 할지 알지 못했다. 승민씨는 "찾는 건 계속 노력하고 있는데 이게 쉽지가 않아요"라며 "봉수고 누구고 간에 애 잃어버린 엄마들은 한없이 찾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말을 이어가는 중간 승민씨의 목소리는 울먹거림에 떨리기도 했다. (관련기사: [어디있니?]"내 암도 널 잃은 죗값이라 여겼다"…32년 기다림)

"그동안 지내는 거야 뭐 별일 없이 지냈는데. 그렇잖아요 부모 마음이라는 게 자식이 없는데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죠. 항시 몸뚱어리 한쪽이 없는 것처럼…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1995년 당시 네살이었던 딸 조하늘씨를 잃어버린 아빠 조병세씨(58)는 횅한 마음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병세씨에게 딸을 찾는 일은 '죽지 않는 한 계속해야 할 일'이다.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어디에 있든 간에 엄마 아부지는 항시 하늘이를 찾으려고 노력을 할테니까, 만나는 그날까지 건강하게만 있어"라고 말했다. 24년 전 잃어버린 딸이 어딘가에서 혹여 추운 날씨에 감기나 걸릴까 걱정하는 병세씨는 최근 건강이 악화돼 오는 9일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는다.(관련기사: [어디있니?] 실종아동이던 엄마, 딸을 잃었다…"용서해주겠니")

"몸이나 건강하게 있으면 좋겠어요." 42년 전인 1977년 5월28일 서울 관악구에서 실종된 아들 김만호씨(당시 만 5세)를 떠올리는 엄마 조희성씨도 (75·여) 아들의 건강부터 걱정했다. 희성씨는 10년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고 지금도 꾸준히 약을 먹고 있는 암환자다. 아들을 잃어버리고 찾을 길이 막막해 아들의 사진이 담긴 전단을 들고 무작정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던 희성씨의 무릎도 정상은 아니다. 아픈 무릎 때문에 매일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고 있는 희성씨는 그래도 아들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지 묻자 희성씨는 "그럼, 어떻게 버려요. 그것 때문에 사는데"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어디있니?] "아들 만호, 잘 살고 있다는 확인만이라도…")

◇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절대 포기하면 안 돼"

30~40년간 똑같은 실망과 낙담, 실패를 계속해온 사람들에게 '희망'을 이야기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이를 잃어버린 시간이 강산이 바뀌는 세월을 넘어서면 부모들은 점점 '이제 그만 포기해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부모들은 어딘가 자신을 찾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최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부모들이 아이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부모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태순씨는 딸 경하씨를 'DNA' 매칭을 통해 찾았다. 4년 전 태순씨는 미국으로 입양된 한인들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친부모를 찾아주는 비영리단체 '325캄라'(325kamra)를 알게 돼 DNA 정보를 등록했고 최근 딸 경하씨가 미국에서 DNA를 등록하게 되면서 상봉이 이뤄진 것이었다. 태순씨는 아직도 아이를 찾고 있는 부모들에게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살고 있을 거야. 포기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관련기사: [어디있니?] '꽃신' 신고 사라진 6살 딸 경하, 44년간 헤매다 찾았다)

태순씨의 사례가 계기가 돼 한국 경찰청은 325캄라를 통해 국내 장기실종자 가족의 DNA를 미국의 입양인들과 대조할 수 있도록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찰청이 대상자를 모집하면 325캄라가 DNA를 채취하고 미국의 DNA 검사기관인 FTNDA(Family Tree DNA)에 검사를 의회해 결과를 가족들에게 회신하는 방식이다. 경찰은 DNA 채취 홍보와 안내 역할을 맡고 325캄라 측에 10월 서울 동대문구 용두치안센터에 문을 연 '실종자가족지원센터' 내에 임시 사무실도 제공했다.

다만, 325캄라가 후원을 받아 활동하는 민간기관인 만큼 1개당 15만원 정도 하는 DNA 키트를 마련하는 것이 당장의 문제다. 현재 실종아동 부모들의 DNA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하고 있지만 법령의 부재, DNA 채취 키트의 차이 등으로 재차 DNA 샘플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325캄라는 1차적으로 올해 연말까지 300개 키트를 경찰청에 제공하고 추가적인 키트 확보를 위한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325캄라는 태순씨와 경하씨의 사례를 들며 "부당하게 입양 보내진 그녀를 한국의 어머니는 44년 동안 찾아다녔다"라며 "이렇게 재회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의 팀원 둘이 자비를 들여 수백 개의 DNA 키트를 가지고 한국으로 날아가 DNA 채취를 하고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장기실종 아동을 둔 대부분의 부모들이 DNA 정보를 등록해 뒀기 때문에 실종 당사자가 DNA 정보를 등록하면 곧바로 가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무연고 아동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실종자들은 자신이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해 부모를 찾는 일을 않곤 합니다.
DNA 채취는 가까운 경찰서를 찾으면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의 간절한 바람을 전합니다. "제발 용기를 내주세요."

**실종 아동에 대한 정보를 알고 계시다면 국번없이 '112' 혹은 '182'로 신고해 주세요. 가족들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종아동찾기 캠페인] '엄마는 울고 있다'
http://www.news1.kr/issue/?5
http://www.news1.kr/find-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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