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앱 '싸고 좋은 방' 찾아갔더니.. "그 매물, 방금 나갔습니다"

입력 2019.12.02 11:00수정 2019.12.03 09:33






[파이낸셜뉴스] ‘보증금 20만원’, 월세 ‘40만원’ 부동산 앱의 매물 리스트를 넘기던 손가락이 멈췄다. 서울에서 이 가격으로 자취방을 구할 수 있다니. 신축에 깨끗하고, 지하철역도 걸어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내 방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서둘러 ‘전화 연결’ 버튼을 누른다. 공인중개사와 나를 이어줄 신호음이 들린다. 가슴이 뛴다.

직방·다방 등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서 방을 구하는 일은 이제 익숙한 모습이 됐다. 2012년 출시된 직방은 지난 6월 기준 누적 앱 다운로드 2700만건을 돌파했다. 회원으로 둔 공인중개소만 3만개가 넘는다. 다방도 출시 6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1800만 건을 돌파하고, 매달 500만명이 이용 중이다. 비슷한 중개 플랫폼도 우후죽순 늘었다.

하지만 부동산 앱의 ‘허위매물’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공인중개소와 약속한 시간에 맞춰 방문했더니 ‘몇 시간 전에 방이 나갔다’며 다른 방을 소개해줬다”는 후기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보증금·월세가 낮고 입지 조건이 좋다며 홍보한 매물이, 일단 고객을 붙잡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부동산앱 '싸고 좋은 방' 찾아갔더니.. "그 매물, 방금 나갔습니다"
29일 구글 플레이 스토어의 부동산 앱 후기란에 등록돼 있는 부정적 후기들. 허위매물에 대해 불평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간 맞춰 찾아가니…”그 매물, 방금 나갔습니다”

지난 25일부터 3일 간 부동산 앱을 통해 서울에서 원룸이 많은 지역(관악구·동작구·영등포구)의 ‘싸고 좋은 방’을 찾아 다녀보니 유사한 사례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먼저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다방 등 부동산 앱을 통해 영등포구 주변 원룸을 둘러봤다. 대부분 보증금이 100만원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보증금 20만원, 월세 40만원’으로 올라온 원룸이 유독 눈에 띄었다. 매물을 올린 공인중개소와 약속을 잡고 다음 날 찾아갔다. 하지만 중개인은 “방금 확인해봤는데 보러온 매물은 방이 나갔다. 비슷한 다른 방들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보려던 방이 사진은 깨끗해 보여도 곰팡이가 심하다. 도배해도 냄새가 나니까 주인이 싸게 냈던 것”이라고 말을 돌렸다. '신축 건물처럼 깨끗하다'며 앱에 올린 설명과 딴판이었다.

동작구에선 ‘보증금 50만원, 월세 20만원’의 원룸 매물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신축에 풀옵션, 위치는 큰 길가 옆이라는 소개가 한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전화를 받은 중개 보조원은 뜸을 들이더니 “사실대로 말씀드려야겠죠”라고 운을 띄웠다. 그는 "과장이 많다. 허위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신 다른 방을 보여드리겠다"고 털어놨다. “주변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허위매물을 올리니 가만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앱에 올라온 ‘싸고 좋은 방’을 골라 연락했을 때 많은 공인중개소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광고용으로 시세보다 많이 싸게 올려놓은 거다”, “이목 끌기 좋은 매물들로 올려놨다”부터 “앱으로 백날 찾아봐야 실제로 들어갈 방은 못 찾을 것”이라는 조언(?)도 들었다.

■업체 단속에도 허위매물 급증…”처벌수위 높여야”

부동산 허위매물은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부동산매물클린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 9월 6225건이던 소비자의 허위매물 신고건수가 다음달 9360건으로 늘었다. 이 중 실제 허위매물이었던 경우도 같은 기간 3807건에서 5496건으로 50% 가까이 늘었다.

중개 플랫폼들은 ‘자체 단속’에 나섰지만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방은 허위매물을 잡기 위한 ‘확인매물’ 제도와 의심지역 집중단속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확인매물은 공인중개소가 등록한 매물을 실소유자와 함께 검증하는 절차다. 다방 관계자는 “이밖에도 모니터링 인력을 10%까지 늘리고 경고 4회를 받은 공인중개사를 퇴출하는 등 허위매물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매물이 올라올 때마다 일일이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에 중개업소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허위매물 등록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민간의 자율규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직접 칼을 빼들었다. 허위매물을 올린 중개업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내년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안은 부동산 중개 대상물을 인터넷에 광고할 때 반드시 명시해야하는 법정 사항이 신설되며, 이를 어기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개정안보다 처벌 수위가 높아야 실효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 차례 허위매물을 올려 적발되면 영업을 정지시키는 등 처벌수위를 높여야 한다"며 "공인중개사 연수 과정에서 윤리교육을 강화해 중개업자들이 경각심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kdh@fnnews.com 김대현 박광환 윤은별 전민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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