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오전 7시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
입시 한파는 잊은 듯 48년차 베테랑 택시운전사 이충일씨(74·제주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 무료로 태워주는 곳'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린 이 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수험생 탐지 레이더'를 가동 중이었다.
사단법인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제주동부지회 소속으로 위기에 처한 수험생들을 시험장까지 택시로 실어 나르기 위해 지회 차원의 자원봉사에 나선 것이다.
전날 차량 점검과 시험장 위치 확인 등 만반의 준비를 마친 이씨는 이날 실시간 교통 흐름을 거듭 살피며 수험생 수송 준비에 완벽을 기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흘렀을까. 다행히 이날 이씨가 맡은 구역에서는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별 탈 없이 시험장에 입실한 듯 고요가 찾아왔다.
그는 "요즘엔 자가용도 많고, 수험생들도 착실해 제가 할 일이 별로 없다"고 머쓱해 하면서도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야 안심이 된다"며 웃어 보였다.
이날 오전 8시40분 1교시 국어영역 시험이 시작된 뒤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는 평소처럼 손님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이처럼 이씨가 수험생들의 '수호천사' 역할을 자처해 온 것은 1993년 첫 수능 때부터 올해로 벌써 26년째.
수능 도입 전 대학 입시를 위해 시행됐던 이른바 학력고사 때까지 포함하면 그의 수험생 수송 자원봉사 경력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30년을 훌쩍 넘는다.
그는 수십 년간 수험생 수송 자원봉사를 해 온 원동력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학창시절에 대한 아련함과 어른으로서의 책임감 때문 아닐까 싶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웠던 시대 상황과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였음에도 가장으로서 한평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2남1녀까지 장성시킨 그였다. 그는 "학생들을 보면 꼭 내 자식 같다"고 했다.
이어 그는 "쌓여가는 추억들도 봉사의 소소한 즐거움"이라고 했다.
봉사 초창기 이씨의 택시는 그의 고향인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에서 '합격 택시'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가 시험장에 데려다 준 수험생들이 수도권 대학에 속속 합격하면서 상경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시험장을 착각한 수험생을 태우고 경찰과 긴급 수송작전을 펴는가 하면, 시험장 앞까지 갔다가 수험생이 준비물을 빠뜨려 다시 부랴부랴 수험생의 집으로 돌아가는 등 웃지 못할 일들도 많았다고 했다.
그는 택시운전사를 하는 동안에는 계속 수험생 수송 자원봉사에 나설 생각이라고 했다. 동료들도 지회 최고참이자 선배인 그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씨는 "수능 전날에는 꼭 수험생처럼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도 많고 마음이 떨리기도 하지만 막상 수능날 아침이 지나면 '작지만 도움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낀다"며 "학생들 모두 수능을 잘 마치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