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뉴스1) 최은지 기자 = 4일 태국 방콕에서 한일 정상이 13개월 만에 만나 11분간 대화를 나눈 데에는 문재인 대통령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엿보였다.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현지시간) 방콕 임팩트(IMPACT) 포럼 회의장에서 개최된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 앞선 사전환담 자리에서 아베 총리와 단독으로 만났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응웬 쑤언 푹 베트남 총리, 훈 센 캄보디아 총리, 통룬 시술릿 라오스 총리, 아웅산 수찌 미얀마 국가고문과 환담을 나눴다. 아세안 각국 정상들은 모친상을 치른 문 대통령에게 조의를 표했다.
이어 뒤늦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도착하자, 문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 인사를 나눈 후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권하며 이끌었다. 이에 양국 정상은 태국 현지시간으로 오전 8시35분부터 46분까지 11분간 단독 환담을 가졌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양측 통역만 대동하고 대화를 나눴다. 양 정상 대화는 일본어-한국어 통역이 아닌 영어통역으로 이뤄졌다. 문 대통령이 말하면, 우리측 통역이 영어로 전달하고, 이를 들은 일본측 통역이 아베 총리에게 일본어로 전달하는 식이다.
그만큼 이번 만남이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문 대통령의 결단력이 돋보이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외교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일본이 대화의 장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방콕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오늘 두 분께서 하신 환담 자리는 미리 협의된 자리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통역을 고려할 때 13개월 만의 11분 대화는 그간 쌓인 한일 관계의 현안을 풀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양 정상이 Δ대화 통한 양국 관계 해결 원칙 재확인 Δ외교부 채널 협의 통해 실질적인 관계 진전 방안 도출 희망 등 큰 틀에서의 의견을 모았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고 대변인은 "양 정상 간 만남이 오랜만에 이뤄졌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한일 관계가 우호적·미래지향적 관계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보다 고위급 협의를 갖는 방안도 검토해보자"고 제의했고, 이에 아베 총리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노력하자"고 답하면서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보다 고위급 협의'가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고민정 대변인은 "고위급 협의가 양국 간 어느 정도 선에서 가능할지, 장관급일지 더 윗단계 협의일지 어느 하나 확정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한일 관계가 좀 더 풀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며 "그 과정 중에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