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 욕심에.. 분홍빛 억새 '핑크뮬리'가 아프다

입력 2019.10.12 10:29수정 2019.10.12 15:16
인기 절정 핑크뮬리, 아쉬운 시민의식
'인생샷' 욕심에.. 분홍빛 억새 '핑크뮬리'가 아프다 [당신의 양심]
/사진=뉴스1화상

[파이낸셜뉴스] 가을의 기운이 제법 완연한 10월입니다. 가을=단풍이 공식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다양한 풍경들이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대세는 분홍빛 억새 '핑크뮬리(분홍쥐꼬리새)'입니다. 핑크뮬리밭이 '인생샷' 명소로 인기를 끌자 전국 지자체는 너도나도 이를 조성해 가을 관광객들의 방문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인생샷을 완성하는 조건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완벽한 배경과 날씨, 구도.. 그리고 수없이 많은 핑크뮬리들의 희생도 동반됩니다. 예쁜 사진을 남기고자 핑크뮬리밭에 무턱대고 들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오늘도 전국의 수많은 분홍빛 억새들이 짓밟혀 스러져갑니다.

■인기 절정 핑크뮬리, 사진 찍는 인파에 '몸살'

'인생샷' 욕심에.. 분홍빛 억새 '핑크뮬리'가 아프다 [당신의 양심]
하늘공원 핑크뮬리밭을 찾은 시민들이 포토존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이혜진 기자

가을의 찬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던 10월의 초순, 억새축제를 일주일 앞둔 서울의 '핑크뮬리 명소' 하늘공원을 찾았습니다. 멀리서부터 분홍 물결이 넘실거렸습니다. 평일 낮이었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억새밭을 지나오며 마주친 사람들의 몇 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핑크뮬리의 인기가 실감이 날 정도였습니다.

'인생샷' 욕심에.. 분홍빛 억새 '핑크뮬리'가 아프다 [당신의 양심]
핑크뮬리를 둘러싼 울타리와 포토존의 모습 / 사진=이혜진 기자

얼마 전까지 둘러져 있던 출입금지 테이프 대신 얇은 줄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핑크뮬리밭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핑크뮬리 훼손을 방지하고자 울타리 사이사이에 조성해 둔 포토존도 눈에 띄었습니다. 안쪽으로 움푹 파고든 포토존에서 사진을 촬영하면 핑크뮬리에 파묻힌 것처럼 보이기에 충분했습니다. 많은 인파 사이에서 2~3명 가량의 질서유지요원이 경광봉을 흔들며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지도 중이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울타리를 넘어가지 않았고, 질서유지요원의 지시도 잘 따랐습니다. 하지만 간혹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핑크뮬리를 신나게 밟으며 사진을 찍는 '양심불량'들도 있었습니다. 질서유지요원들이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며 목이 터져라 경고를 했지만 이를 무시하는 몇 팀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예쁘게 피어나던 핑크뮬리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그대로 시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핑크뮬리 훼손 막으려는 공원 노력에도.. 아쉬운 시민의식

'인생샷' 욕심에.. 분홍빛 억새 '핑크뮬리'가 아프다 [당신의 양심]
하늘공원 핑크뮬리밭에서 질서 지도 중인 질서유지요원 / 사진=이혜진 기자

서부공원녹지사업소측 질서유지요원 A씨는 "이렇게 줄을 쳐놓아도 안쪽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주로 아주머니들이 많이 들어가곤 한다"면서 "올해 새롭게 심어서 막 피고있는 핑크뮬리들이 많이 죽는다"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핑크뮬리 사이사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공간도 만들어 놨는데, 사람 심리라는 것이 그렇다. 안쪽으로 뚫어 놓으면 더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법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날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찾은 주부 이모(43·여) 씨는 "작년에 아이들과 함께 왔을 땐 이렇게 생긴 포토존이 없었다. 올해 새로 생긴 것 같다"면서 "더 예쁜 사진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심과 핑크뮬리를 보호하려는 공원의 노력 모두가 반영된 결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시민 신모(27·남)씨는 "핑크뮬리 사이에서 사진을 찍으면 더 예쁘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나. 하지만 그 마음 때문에 예쁜 식물들을 밟아 죽일 수는 없다"라면서 "사람들이 조금만 더 질서를 잘 지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인생샷' 욕심에.. 분홍빛 억새 '핑크뮬리'가 아프다 [당신의 양심]
사람들의 발에 밟힌 핑크뮬리 / 사진=이혜진 기자

가을빛을 가득 머금은 갈색 억새들과 분홍빛 핑크뮬리는 어떻게 봐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광경 속에서 더 예쁜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누구라도 이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욕심들과 비양심이 모이고 모여 이런 불필요한 '울타리'와 규제들을 만든 것은 아닌지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질서유지요원과 울타리 없이도 자연 그대로를 눈으로 즐기며 아낄 수 있는 더욱 수준 높은 시민의식이 하루 빨리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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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et@fnnews.com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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