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알바하러 갔더니.. 대뜸 "너는 도망 안 갈 거지?"

입력 2019.09.10 07:00수정 2019.09.10 09:28
각자의 이유로 돈이 필요한 사람들.. 사연 들어봤더니..
쿠팡 알바하러 갔더니.. 대뜸 "너는 도망 안 갈 거지?"
쿠팡 홍보영상 갈무리 © 뉴스1


쿠팡 알바하러 갔더니.. 대뜸 "너는 도망 안 갈 거지?"
오전 6시20분에 구로에서 출발하는 쿠팡 셔틀버스 © 뉴스1/정혜민 기자


쿠팡 알바하러 갔더니.. 대뜸 "너는 도망 안 갈 거지?"
쿠팡 덕평 물류센터 2층. 이곳에서 출퇴근 확인을 한다. © 뉴스1/정혜민 기자

(이천=뉴스1) 정혜민 기자 = "알바생들이 많이 도망가. 너는 안 갈 거지?"

쿠팡 물류센터에서 만난 사수 박현구씨(55·가명)는 기자가 '추노'할 것으로 의심했다. 추노의 사전적인 의미는 조선시대에 주인과 따로 사는 노비에게 몸값을 징수하는 일을 말한다. 과거 TV드라마 제목처럼 도망간 노비를 잡아오는 일이란 의미도 있다. 아르바이트생 사이에서 추노는 일이 너무 힘들어 일당을 포기하고 작업장을 이탈하는 것을 말하는 일종의 은어다.

물류센터에서는 택배 박스, 택배 봉투, 휴지, 음료, 세제 등이 작업대 위로 쉴 새 없이 총알처럼 튕겨져 나왔다.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작업대 위에 상품이 그득히 쌓이기 십상이었다. 모두들 상자를 들고 분주히 움직였다.

대형 선풍기가 사방에서 바람을 내보냈지만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먼지와 땀냄새가 뒤엉켰다. 절반은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기계와 선풍기의 소음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지난 4일 쿠팡 덕평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체험했다. 쿠팡의 물류센터 중 가장 큰 곳이다. 쿠팡 물류센터는 쿠팡의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에서 운영한다.

추석 앞두고 물량은 느는데 인력 수급 어려워

오전 6시20분, 가산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쿠팡 물류센터는 휴대폰 앱을 통해 인력을 모집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이 대부분일 거라 예상했는데 버스에 오르니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았다.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채 눈을 붙이고 있었다. 버스는 한 시간가량 경기 이천시 덕평리까지 달렸다. 덕평 물류센터에 도착한 뒤 출근 등록을 하면 쿠팡 측에서 휴대폰을 걷어간다. 휴대전화 반입은 엄격히 금지되는데 층마다 금속탐지대를 설치해 철저하게 검사했다.

"지금 사람이 없어!" 지금 쿠팡 덕평 물류센터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물량이 늘어난 데다 대학교 개강으로 물류센터의 허브(Hub)에서 출고 및 상하차 일용직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서다. 기자가 현장에 배치되자 동료들은 "아까는 둘이서 했는데 이제 좀 살겠다"며 반겼다.

물류센터는 출고 및 상하차를 하는 '허브', 입고와 포장 등을 담당하는 '풀필먼트센터'로 나뉜다. 허브가 택배회사의 상하차 물류센터라면 풀필먼트는 대형마트의 창고로 보면된다. 쿠팡 직원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들어보니 허브 인력 수급이 요즘 원활하지 않다고 한다. 허브가 풀필먼트보다 노동 강도가 더 세고 시급도 700원 정도 더 높다.

애초 기자는 수월한 풀필먼트 업무를 하기로 확정받고 출근했지만 인력 부족으로 얼떨결에 허브의 출고 업무를 맡게 됐다. 쿠팡 직원은 "택배업체 물류센터보다 쉽고 시급도 높은 편"이라며 다독였지만 긴장한 기자의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하지만 상하차를 하게 된 남자 동료들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허브의 출고 업무는 분류돼 나오는 물건을 '팔레트'라고 부르는 큰 판에 최대한 높게 쌓아 지게차 앞까지 옮겨주는 일이다. 테트리스를 하듯 각양각색의 물건들을 쓰러지지 않게 효율적으로 차곡차곡 올리는 것 자체는 재밌었다. 물건들이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랩으로 상자들을 둘둘 감싸야하는데 한 번 '래핑'을 하고 나면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인력이 부족하니 노동강도는 더 세졌다. 사수 박 씨는 "추석 전이라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선물도 사고 배송이 중단되기 전에 미리 주문하고 있어 물량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식당에서 주6일 일하고 남은 하루는 쿠팡 알바"

각자의 이유로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수다가 유일한 오락이다 보니 하루 사이에 동료들과 금방 친해졌다. 같이 신입으로 입사한 김나은씨(27·가명)가 기자를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그는 학생이라고 착각할 만큼 앳된 외모였다.

그는 평소에는 주 6일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데 단 하루 주어진 휴일에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그는 "추석을 앞두고 이래저래 돈이 필요한 일이 많다"며 "양가 부모님들께 적어도 10만원은 드려야 하지 않겠나"하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투잡으로 이곳에 왔다. 또 다른 사수 김혁진씨(23·가명)는 간호대를 다니는 학생이다. 병원 실습을 앞두고 있는데 집과 병원의 거리가 멀어 자취를 하기 위해 돈을 모은다고 했다. 그는 "내일부터 방을 알아봐야 해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경제적으로) 힘드니까 여기 왔지!"라고 했다.
그는 "이번 정부 들어 더 힘들어졌다"며 "아들 등록금도 400만~500만원 하는데다 딸 학원비도 월 60만원씩 나간다"고 푸념했다. 이 일을 한 지 3개월 됐다는 박 씨는 그사이 몸무게가 8㎏ 빠졌다고 말했다.

물류센터에 모인 수많은 택배 물건들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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