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국내 텀블러 업계 1위 기업인 '써모스코리아'가 '전범기업 계열사' 여부를 놓고 진실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일본의 무역보복 이후 'NO 재팬' 열기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어 '전범기업'으로 확인되는 순간 매출 타격을 불가피한 상황이다. 써모스코리아가 미쓰비시(三菱)와의 관계를 뒤늦게 인정했지만 '전범기업 계열사는 아니다'고 항변하는 이유다.
<뉴스1>은 22일 써모스코리아의 주장을 기초로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 그룹에서 써모스코리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하나씩 점검해봤다.
써모스코리아는 '써모스재팬'이 100% 지분을 소유한 일본회사다. 써모스재팬의 지분은 모기업 '다이요닛산(大陽日酸)'이 100% 보유하고 있다. 다이요닛산의 최대주주는 전범기업 미쓰비시 그룹 산하 계열사인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다. 지배구조로 보면 써모스코리아는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의 증손회사 격이다.
하지만 써모스코리아는 "모기업 다이요닛산이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의 계열사는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전범기업 계열사는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전범기업 '미쓰비시 화학'은 2년 전 다른 미쓰비시 계열사들과 합병하면서 사라졌고, 새로 설립된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과 써모스코리아는 아무런 지분관계가 없는 별개 회사라는 점이 주된 근거다.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와 지분관계 없다?"→지분 50.59% 최대주주
써모스코리아는 공문을 통해 "써모스코리아의 모회사는 '써모스 주식회사(써모스재팬)'이며, 써모스 주식회사의 모회사인 '다이요닛산'은 전범기업과는 관련이 없는 회사"라고 입장을 밝혔다.
써모스코리아 관계자는 수차례에 걸쳐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와 다이요닛산은 지분관계가 전혀 존재하지 않고, 경영상 영향도 끼치지 않는 별개 회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뉴스1> 취재 결과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는 써모스코리아의 모기업 다이요닛산의 지분을 50.59% 소유한 최대주주로 확인됐다.
다이요닛산(다이요 닛폰 산소)이 지난해 11월12일 일본 전자공시시스템인 'EDINET'에 공시한 '제15기 2분기 분기별 증권보고서'에 따르면 주식회사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가 다이요닛산의 주식 21만8996주(50.59%)를 가진 최대주주로 등재돼 있다.
다이요닛산이 올해 7월9일 공시한 '제16기 1분기 분기별 증권보고서' 연결재무제표에도 모회사를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로 지칭하고 있다.
구태여 공시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다이요닛산과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의 관계는 대외적으로 공개돼 있다. 다이요닛산은 자사 홈페이지에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 URL 링크를 걸고 미쓰비시 케미컬 로고와 다이요닛산 로고를 나란히 표기하고 있다.
써모스코리아는 이에 대해 "의사소통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가 다이요닛산의 최대주주는 맞지만, 미쓰비시 케미컬과 다이요닛산은 아무런 지분관계가 없는 별개 회사"라고 정정했다.
◇써모스 "미쓰비시 케미컬과 관련 없다…전범기업 계열사 아냐"
써모스코리아는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와의 연결고리는 인정했지만, 미쓰비시 케미컬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미쓰비시 케미컬과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의 역사는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는 미쓰비시 그룹의 화학계열회사 '미쓰비시 화학'이 의약품제조 자회사 '미쓰비시 웨르파마'와 합병해 2005년 10월3일 설립한 지주회사다.
미쓰비시 화학은 이후 12년간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의 자회사로 존속하다가 2017년 4월 구(舊) 미쓰비시 수지·미쓰비시 레이온과 합쳐져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 미쓰비시 화학을 비롯한 3개 계열사가 영위하던 사업은 모두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이 이어가고 있다. 현재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의 지분은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가 100% 쥐고 있다.
문제는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를 만들고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을 설립한 '미쓰비시 화학'이 전범기업이라는 점이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지난 2012년 발표한 '전범기업 리스트'에는 미쓰비시 화학이 전범기업으로 등재돼 있다.
써모스코리아가 미쓰비시 케미컬과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를 구분 짓는 이유도 결국 '전범기업'이라는 오명만큼은 피하기 위해서다.
써모스코리아는 "미쓰비시 화학은 2017년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으로 합병되면서 사라졌다"며 "설령 미쓰비시 화학의 잔재가 미쓰비시 케미컬에 남아있더라도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는 전범기업과 상관없는 회사이기 때문에 계열사인 써모스코리아도 전범기업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경영학계 "경제적 동일체로 봐야" vs 법조계 "법인격 달라"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와 미쓰비시 케미컬은 모두 전범기업 '미쓰비시 화학'으로부터 설립된 회사다. 태생은 같지만 두 회사의 관계에 경영학적·법적 잣대를 들이밀면 명백한 시각차가 벌어진다.
경영학계에서는 미쓰비시 케미컬과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를 하나의 '경제적 동일체'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유병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는 계열사의 지배를 위해 만든 구조일 뿐"이라며 "(미쓰비시 케미컬과) 실질적인 동일체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도 "지주회사그룹은 특정핵심 계열사의 문제가 그룹 전체에 투영될 여지가 있다"며 "미쓰비시 케미컬이 그룹 내에서 얼마나 핵심적인 계열사인지, 지주회사의 경영철학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는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의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미쓰비시 케미컬은 자사를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 그룹(MCHC Group)의 핵심운영사'로 소개하고 있다.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와 미쓰비시 케미컬은 인적자원과 경영철학도 밀접하게 공유하고 있다. 히토시 오치(Hitoshi Ochi)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 회장은 1977년 미쓰비시 화학공업㈜에 입사해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 대표이사까지 오른 인물이다.
미쓰비시 케미컬은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의 경영 철학인 '가이테키(KAITEKI·사람과 사회, 지구의 지속 가능한 안녕)'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 그룹'을 주어로 사내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한 업계 지주회사 관계자는 "한 회사가 인적·물적 분할하던, 다른 회사와 합병을 하던 회사의 명칭이 달라지는 것이지 인력과 자본은 계속 움직이는 것"이라며 "결국 뿌리는 전범을 통해 벌어들인 자본금에서 나왔다는 것은 동일하다"고 꼬집었다.
반면 법조계는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와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을 동일체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쓰비시 화학이 지주회사를 설립한 후 다른 계열사들과 합병해 새로운 법인을 만들었다면, 지주회사와 새 법인은 서로 다른 다른 법인격을 가진다는 해석이다.
이충윤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는 "경영학적으로 본다면 두 회사를 '경제적 동일체'로 볼 여지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법리적으로 접근하면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과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의 법인격을 다르게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범기업 꼬리표' 달 수 있나…"전범기업 계열사로 봐야" 한목소리
써모스코리아에 '전범기업 꼬리표'를 달 수 있는지에 대해선 경영계와 법조계 모두 '전범기업 계열사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유 교수는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가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과 실질적인 동일체이고,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라면 써모스도 엄연히 미쓰비시 계열사"라며 "두 회사가 관련이 없다는 것은 교묘하게 문제를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도 "계열사 양자 간에 직접적인 지분관계가 없더라도 실질적인 지배관계가 인정된다면 계열회사로 판단된다"면서 "전범기업이란 사회적인 평가이기 때문에 미쓰비시 그룹 계열사라면 전범기업의 계열회사로 판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쓰비시의 전범성(戰犯性)은 개별 회사가 아닌 그룹 전체에 미치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다. 모든 계열사가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계열사 사이에 지분관계 없더라도 밀접한 연관성이 인정된다는 설명이다.
미쓰비시그룹은 1870년 창업주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弥太郎)가 세운 선박회사에서 출발했다. 이후 미쓰비시 상회로 사명을 바꾼 뒤 군수사업을 시작한 미쓰비시는 중공업·전자·자동차·화학·철강 등 계열사를 넓혔고 오늘날 스미토모, 미쓰이와 함께 일본 3대 재벌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미쓰비시가 전범기업으로 불리는 이유도 그룹 전체가 강제징용과 전쟁에서 벌어들인 자본금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반론도 있다. 써모스는 미쓰비시 그룹이 설립한 회사가 아닌 인수합병한 회사의 자회사다.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의 계열사가 된 시점도 비교적 최근이어서 미쓰비시의 '전범성'과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써모스는 본래 독일에서 태동한 기업이다. 무려 85년간 유럽에서 번성하다가 지난 1989년 다이요닛산에 매각돼 일본기업이 됐다. 미쓰비시 케미칼홀딩스의 증손회사가 된 것은 4년 전이다. 써모스의 전 역사를 통틀어 불과 3.5%만 미쓰비시의 그늘이 드리운 셈이다.
써모스는 1904년 독일에서 '보온병'이라는 신개념 상품을 세상에 내놓으며 창업했다. 당시에는 보온병의 개념조차 생소했기 때문에 보온병의 영어이름 '써모스(Thermos)'가 그대로 브랜드명이 됐을 정도다.
써모스는 1970년대까지 전 세계에 보온병을 보급하면서 승승장구했지만, 스테인리스 보온병이 등장하면서 사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결국 1989년 일본산소(현 다이요닛산)에 1억3400만달러에 회사를 매각하면서 일본회사로 거듭났다. 이후 2015년 다이요닛산이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에 팔리면서 써모스도 덩달아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의 증손회사가 됐다.
써모스 입장에서는 모회사가 미쓰비시 그룹에 팔리면서 덩달아 미쓰비시 계열사가 된 격이다. 써모스코리아는 "미쓰비시 케미컬 코퍼레이션과 지분관계가 없고, 경영 간섭도 받지 않는 별도 법인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업계 지주회사 관계자는 "써모스가 최근에서야 미쓰비시 케미컬홀딩스 계열사가 됐다면 설령 '전범기업의 계열사'라는 수식어는 불가피하더라도 최소한 써모스 자체에 '전범기업' 이미지를 씌워선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