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속초=뉴스1) 권혜민 기자,고재교 기자,장시원 인턴기자 = 여름 휴가가 피크에 이른 지난 2일. 하루 수십만 명이 찾는 강원도 해수욕장의 밤은 쓰레기장으로 변한다.
이날 더위가 한풀 꺾이고 백사장에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자 강릉 경포해수욕장에는 20대로 보이는 무리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기 시작했다. 가벼운 옷차림이지만 양손에는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이들은 돗자리를 펴 자리를 잡고는 이내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완전히 내린 밤 8시가 넘어가자 해수욕장의 밤은 낮처럼 뜨거워졌다. 자정이 돼가도 자리를 뜰 줄 모르고 분위기에 취해갔다.
다음날 수평선 너머 해가 떠오르자, 젊은 청춘들이 즐기고 간 백사장의 민낯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리들도 간간히 있었지만 50m도 안 되는 간격으로 백사장을 빼곡하게 매운 돗자리 위로는 소주병, 맥주병 할 것 없이 각종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무엇보다 먹다 남은 음식물과 토사물은 보는 이들로 혐오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폭죽 쓰레기, 바람 빠진 튜브도 곳곳에 널부러져 있었다.
지난달 27일 야간해수욕장을 개장한 속초해수욕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청춘들의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백사장에는 쓰레기가 점점 더 쌓여갔다.
자정이 넘어가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대학생 무리가 자리를 뜨려는 듯 했다.
‘설마 그냥 가나?’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걔 중 한명이 소주병으로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먹다 남은 라면 건더기를 넣는다. 누가 볼 새라 그 위를 모래로 덮는다.
남은 술도 모두 모래위에 뿌리고는 자리를 떴다. 쓰레기와 함께 양심도 버리고 갔다.
관광객 김모씨(45·서울시)는 “청년들이 쓰레기만 그대로 두고 떠나더라”며 “담배를 폈나본데 꽁초를 땅에 박아 놨다. 다른 관광객들이 볼까봐 부끄럽다”며 “내가 치울까 했지만 너무 많아 엄두가 안 난다”며 혀를 끌끌 찼다.
속초해수욕장 인명구조요원 A씨는 “백사장에서 술을 마시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문제는 냄새다. 음식물을 모래에 파묻고 담배꽁초, 술을 그냥 버리고 가기 때문”이라며 “모래에 스며든 냄새는 계속 남는다”고 토로했다.
피서철 동해안 지자체들은 쓰레기와 전쟁을 벌인다. 해수욕장 개장 기간 경포해수욕장은 새벽 4시부터, 속초해수욕장은 새벽 6시부터 작업자들이 투입돼 대대적인 청소를 벌인다.
평일에는 두 시간 정도 작업하면 백사장이 깨끗해지지만 주말이면 5시간 작업을 해도 모자랄 정도다.
경포해수욕장에서 13년 째 일한 전모씨(54년생)는 “(백사장 위) 쓰레기를 계속 주우며 가니까 허리가 부러진다. 안 힘들 수 없는 일이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며 “평일에는 작은 청소차 2대로 매립장까지 30번 정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주말에는 셀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작업자들은 땀이 비 오듯 흐르지만 피서객 맞이를 위해 작업에 열중한다. 하지만 모래속 깨진 유리조각, 음식물 쓰레기는 애를 먹인다.
전씨는 “작업을 하면서 깨진 유리에 손을 많이 베였다”며 “깨진 병이나 돗자리 끈 같은 거를 우리가 꼼꼼하게 주워줘야 모래 고르는 기계 작업을 할 때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속초해수욕장에서 청소 아르바이트 중인 한 대학생은 “쓰레기 찾는 게 보물찾기하는 것 같다. 맥주병이 제일 무거워 힘들다. 모래에 꽂아놓은 담배꽁초는 오히려 짚기가 쉬워 괜찮다”고 말할 정도다.
속초시는 야간 개장을 위해 백사장을 환하게 밝히는 투광등을 설치했다. 백사장이 밝아지자 피서객들이 주변을 의식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을 거라는 기대도 된다.
시는 지난달 5일 해수욕장 개장 후 하루 1.7톤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이 쓰레기들의 절반은 해수욕장 주변 음식점에서 뿌린 홍보 전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 관계자는 “피서객이 가져와 버린 쓰레기가 50%라면 나머지 50%는 업체들이 뿌린 홍보 전단지”라며 “이 같은 행위는 물론 쓰레기 투기 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