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국가발전개혁위원회 "美의 화웨이 제재 동참시 불이익"
한쪽에선 中의 반독점 조사…실적 둔화까지 겹쳐 '삼중고'
(서울=뉴스1) 주성호 기자 =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메모리 수요 둔화로 올해 실적이 전년보다 급감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화웨이(HUAWEI)를 포함한 자국 기업과의 거래를 중단하지 말라고 던지는 '압박'의 강도가 거세지고 있어서다.
특히나 중국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1년 넘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을 상대로 가격 담합 혐의로 '반독점 조사'를 벌이고 있다. 칼자루를 쥔 중국 정부의 '위협'에 한국 기업들로선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 4~5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글로벌 IT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미국이 벌이고 있는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지 말 것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호출에 불려간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기업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ARM 등 글로벌 IT 업체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로부터 "미국의 제재에 적극 협력하거나 동참하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사실상 경고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과 SK 등 해당 기업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떠한 공식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전전긍긍하며 추이를 살펴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공개석상에서 "5G 네크워크가 한국 전역에서 어떻게 구체화될지에 대한 안보 영향을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우리 기업에 반(反)화웨이 동참을 요구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수출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반도체 기업들의 눈앞에 위기가 닥쳤으나 청와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될 부분"이라며 쉬쉬하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이번 '화웨이 제재' 사태를 빌미로 삼성과 SK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중국의 반독점 조사 압박이 더욱 거세지진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지난해 5월부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D램 업체에 대해 중국내 매출거래 과정에서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과징금 규모가 최대 1조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해당 조사는 1년 넘게 진행 중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기업과 일반적인 비즈니스 관계라 하더라도 화웨이 사태를 둘러싼 압박이 부담스러웠을텐데 반독점 조사까지 받고 있어서 말그대로 사면초가인 상태"라고 토로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조짐을 보인 반도체 경기 둔화의 여파가 올 상반기에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2분기 영업이익 예상치(컨센서스)는 6조36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9.4%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8300억원대로 전년 동기보다 85% 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투톱'인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실적 하락은 국내 수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우리 기업의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1.5% 감소한 235억4000만달러로 나타났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수출이 2018년 1분기보다 26.2% 줄었다. 1분기 수출증가율은 10분기만에 역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기업 한 관계자는 "지난해만큼 실적이 좋기라도 했으면 고민을 하나라도 덜 수 있었을 것"이라며 "메모리 불황에다가 미중 무역전쟁까지 덮쳐 대외 불확실성이 여느 때보다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