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된 죄책감' 시달리는 헝가리 생존자들.. 팔 걷은 한인들

입력 2019.06.03 13:57수정 2019.06.04 17:02
한인교회들 '침통한 일요일'…실종자 귀환 간절히 기도
'구조된 죄책감' 시달리는 헝가리 생존자들.. 팔 걷은 한인들
현지시간으로 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한인장로교회에서 신도들이 유람선 사고를 추모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2019.6.2/뉴스1 © News1


'구조된 죄책감' 시달리는 헝가리 생존자들.. 팔 걷은 한인들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사고 닷새째인 2일 오전(현지시간)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인근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공간에 한글로 쓴 추모메시지가 남겨있다. 2019.6.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홀로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치료 거부…심리치료 절실"
한인교회들, 물자지원·생존자위로…합동 추모예배 진행

(부다페스트=뉴스1) 유경선 기자 = 지난 29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불의의 사고로 순식간에 침몰한 '허블레아니호' 참사는 헝가리 내 한인사회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0년 넘게 현지에 살고 있는 교민들도 '이런 사고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아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침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현지에 머무르는 실종자 가족들과 생존자를 돕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현지시간으로 2일 일요일을 맞은 부다페스트 내 한인교회들은 실종자의 조속한 생환과 가족들의 안정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면서 물심양면 지원에 나섰다.

사고 직후부터 생존자들을 지켜본 현지 한인들은 생존자들이 가족 또는 친구를 잃고 혼자서만 살아남았다는 생각으로 힘겨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에 대한 심리적인 지원이 더 빨리 이뤄졌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으로는 헝가리 내 한인사회가 더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줄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인교회들 '침통한 일요일'…실종자 귀환 간절히 기도

"실종자들이 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시고, 생존자들이 사고 후유증으로부터 빨리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이날(2일) 오전 부다페스트 시내 한인장로교회 예배는 유람선 사고를 위한 기도로 시작됐다. 기도를 들으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신도도 보였다.

신도들에 따르면 이번 사고에서 실종된 한국인 가이드 2명 중 1명은 이 교회 예배에 출석한 적이 있다. 또 다뉴브강 머르기트섬 내 한국정부합동 신속대응팀에서 구조대장을 맡고 있는 주헝가리대사관 소속 송순근 국방무관 등 대사관 직원들도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채화 담임목사는 "(가이드가) 헝가리 서부 도시 '죄르'에서 살다가 부다페스트로 이사를 와서 가이드 일을 성실하게 하던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예배 후) 구조현장에 지원활동을 나가서 도울 일은 없을지 살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생존자들 '혼자 구조' 괴로움으로 치료도 거부"…심리치료 강조

"생존자 분들은 치료도 거부하실 만큼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셨습니다. 한국에서 온 가족들을 만나면서 점점 기운을 차리고 계시기는 하지만 심리치료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부다페스트 내 또 다른 한인교회에서도 신도들은 사고 피해자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모았다. 피해자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살피는 한편 컵라면과 김밥 등 실종자 가족들과 생존자들의 헛헛한 마음을 달랠 한국 음식도 준비했다.

헝가리 생활 25년째인 문창석 담임목사는 교회 신도들과 함께 사고발생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생존자를 위로하러 달려갔다. 생존자 7명 중 먼저 퇴원한 6명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픔을 함께 나눴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2명은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랐지만 기적적으로 구조됐다.

문 목사는 "많이 고민됐지만, 이분들을 제대로 돕기 위해 어떤 상태이신지 말하고 싶었다"며 조심스럽게 생존자들의 상태를 전했다.

그는 "이분들은 저마다 혼자 구조됐다는 생각 때문에 몹시 힘들어하고 있다"며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구조된 분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물조차 못 넘기셨습니다. 당시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으면 온몸에 타박상을 입으셨는데, 약 바르는 것도 거부하셨어요. '나만 살았다'는 죄책감 때문인데, 이런 부분에 대해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문 목사는 그러면서 트라우마 등 심리치료 지원을 가장 먼저 제공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헝가리인 심리치료사를 모셔 와서 5분이 상담을 했다고 합니다. 애쓰는 모습을 보여 주셔서 참 감사했지만 상담 진행 중 통역이 들어가니 잘 안 됐다고 해서 안타깝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존자들의 상태도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 목사는 "금요일에는 교회에서 싸다드린 김밥을 생존자분들께서 드셨다고 하더라"며 "토요일에도 잠깐 뵀는데 (한국에서 온) 가족들과 마음의 짐을 나누면서 상태가 나아지셨다"고 말했다. 비로소 마음을 열고 당시 상황을 털어놓으면서 오열한 생존자도 있었다.

문 목사는 "한글이 되는 노트북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와서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을 위한 여성가족부 주축의 심리지원단이 언제 출국했는지, 규모는 어떻게 되는지 내용을 재차 확인하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인사회 "도움창구 일원화했으면"…합동 추모예배 진행

외교부에 따르면 헝가리 내 거주하는 한인은 1700여명 정도다. 아직 대표성이 있는 한인조직이 없어 체계적인 지원활동이 이뤄지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 목사는 "이렇게까지 큰 사고 경험이 없었던 상황에서 아직까지는 지원체계가 일원화해 있지 않아 '각개전투' 중"이라며 "교회들끼리 협력을 하려고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사관 등 정부기관이 창구를 일원화해서 뭐가 필요한지 알려주면 각자 가능한 부분을 찾아서 지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 내 한인교회들은 헝가리에 머물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 .합동추모예배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7시30분 가족들이 머무는 부다페스트 내 호텔에서 이들을 위한 첫 예배가 열렸다. 한인교회들은 순서를 돌아가며 예배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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