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국, 중국 음식 문화 영향 받아 미식 수도로 불려
(서울=뉴스1)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 필리핀 음식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베트남 쌀국수, 태국 팟타이, 인도네시아 나시고랭 등 동남아 각국의 요리는 이제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만, 필리핀을 대표하는 것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필리핀 요리는 스페인, 미국, 중국 등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퓨전 요리'처럼 다채롭고 매력적인 맛을 낸다.
필리핀 관광부는 필리핀 미식의 도시로 불리는 팜팡가주(州)와 꼭 먹어봐야 할 음식 3가지를 소개했다.
한국에는 골프 여행지 '클락'과 '수비크'으로 잘 알려진 팜팡가는 '필리핀의 미식 수도'라고 불릴 만큼 다채로운 식문화를 자랑한다.
팜팡가 지역 요리는 한때 필리핀을 지배했던, 스페인처럼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조화롭고 진한 맛을 내기 위해 손이 많이 가더라도 다소 복잡한 조리법을 택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우수한 식자재도 미식 수도라는 명성에 한몫했다. 예전부터 근처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고, 팜팡가 강이 범람하면서 이 지역 토양은 수분이 많고 기름지기로 유명했다. 기름진 토양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품질이 좋다.
이처럼, 팜팡가 지역의 훌륭한 식자재와 스페인에서 건너온 조리법이 만나 필리핀 '미식수도' 팜팡가가 탄생했다.
◇파에야인듯 파에야 아닌, 브링헤 (Bringhe)
브링헤는 노란 강황 육수에 갖가지 채소와 육류를 곁들여 지은 '쌀 요리'다. 겉모습만 보면 스페인의 대표 요리인 '파에야'와 비슷하다.
그러나 브링헤는 놀랍게도 스페인 식민 시대 이전부터 있던 음식이다. 정복자들이 도착하기 전 전혀 교류가 없던 두 나라에서 비슷한 음식을 개발한 것이 흥미롭다.
마늘, 양파, 피망, 당근 등 갖가지 채소가 내는 향미와 닭고기, 코코넛 우유의 풍미와 감칠맛이 일품이다. 코코넛 우유가 들어가 자칫 느끼할 것 같지만 강황이 끝맛을 알싸하게 잡아줘 물리지 않고 계속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브링헤를 만드는 데에 시간과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주로 축제에서 먹는다. 큰 솥으로 한번에 만들어 파는 축제 음식으로 오랫동안 필리핀인의 사랑을 받아 왔다.
◇서민의 애환이 있는 요리 시시그(Sisig)
시시그는 돼지 머리 고기와 닭 간을 칼라만시, 양파, 고추와 볶은 음식이다. 새콤하면서 짭짤하고 매콤한 맛을 낸다. 현지인과 여행자에게 일품요리나 맥주 안주로 대단히 인기가 많다.
최근엔 머릿고기와 닭간 외에도 요리사의 재량에 따라 족발, 닭고기, 통조림 참치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스타 셰프 고 앤서니 보댕이 방송에서 그 맛을 극찬하기도 했다.
전 세계 미식가들이 인정하는 시시그의 시작은 아주 서민적이었다. 돼지 부위중에서 가장 저렴한 머릿고기가 들어간다. 1970년대 앙헬레스 시티의 루시아 쿠나난(Lucia Cunanan)이라는 여성이 미군 기지에서 돼지 머리를 소비하지 않자, 이를 공급 받아 개발한 조리법이 시시그의 시초다.
시시그가 온 필리핀인의 '국민 음식'이 되면서, 팜팡가 주민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앙헬레스 시티는 무형 문화재로 '시시그 볶기'를 등록하는가 하면, 매년 12월 '시시그 페스티벌'을 연다.
◇소고기와 채소가 토마토 소스에 풍덩… 모르콘 (Morcon)
모르콘이라는 이름은 원래 스페인 전통 소시지를 의미하지만, 필리핀에서는 얇게 저민 쇠고기 등심에 초리소, 소시지, 삶은 계란, 당근, 피클 등을 넣고 둘둘 말아 토마토 소스에 졸인 요리다. 취향에 따라서 치즈나 베이컨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맛은 우리에게도 무척 친숙하다. 소고기와 야채를 토마토 소스에 푹 졸여 이태리의 토마토 소스가 생각난다. 쇠고기로 갖가지 재료를 둘둘 말고 동그랗게 썰어 놓은 모양도 꼭 김밥처럼 생겨 재미있게 먹을 수 있다.
모르콘은 필리핀 전역에서 즐겨먹는 요리지만, 팜팡가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풍부하고 조화로운 맛을 낸다. 필리핀 현지에서도 팜팡가의 모르콘은 '초리소'를 듬쁙 넣어 감칠맛을 극대화하기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