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뉴스1) 고재교 기자 = "죽어서도 외할아버지 뵐 면목이 없어요."
할아버지 때부터 5대가 화가집안인 조영식씨(60)는 화마가 휩쓸고 간 자신의 가옥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조씨는 화원이었던 1대 임전 조정규 화백과 어진화가였던 2대 소림 조석진, 2대의 외손자 3대 소정 변관식 화백과 그의 외손자인 4대 화가다.
지난 4일 발생했던 강원 고성산불에 의해 집과 바로 옆에 있던 화실이 전소되면서 그동안 보관해뒀던 그림이 모두 타버렸다.
40평 남짓한 화실은 1대 선조 때부터 물려받은 미술작품 100여 점을 보관했던 곳으로 조씨가 평소 그림을 그리던 장소다.
조씨는 "외할아버지가 1974년 마지막으로 설악산 일대를 그리셨는데 세상에 내놓지도 못하고 불에 탔다"며 "작품 하나도 건지지 못해 통탄할 노릇이다"고 하소연했다.
외할아버지와 그의 친구들은 초기 한국화단의 토대를 만들고 제자를 양성해 화단을 이끌었다. 외할아버지의 대표작품으로는 '농가도' '무장춘색도' '외금강삼선암도' 등이 있다.
조씨는 외할아버지로부터 그림수업을 받다가 1976년 그가 타계하자 17세이던 1977년 혜촌 김학수 문하에서 동양화를 배우며 화가의 길을 이어갔다.
조씨는 이번 산불로 "화가인 아들도 전시회를 앞두고 3년 동안 준비한 작품 200여점이 모두 타 버렸다"며 속상해했다.
또 미술관을 세우려고 계획했었지만 그동안 모아뒀던 그림들이 모두 타버리면서 꿈마저 사라졌다.
그는 "불덩이 수백 개가 집으로 날아왔다"며 끔찍했던 밤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집으로 날아드는 불덩이의 폭격에 발만 동동 구르며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제가 그린 그림은 머릿속에 있으니까 다시 그리면 되는데 선대가 남겨주셨던 수많은 그림들이 다 타버린 것이 마음 아파 병이 들 지경이다"고 토로했다.